비과세 보험상품, 거액 탈세에 악용됐다

비과세 보험상품, 거액 탈세에 악용됐다

입력 2013-11-13 00:00
수정 2013-11-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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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가입자에게 금품 제공한 ‘보험왕’ 설계사 2명 검거조세포탈 자금 400억원 수백개 상품으로 관리 사실 확인

세무당국에 납입 내역을 통보할 필요가 없는 비과세 보험상품이 불법자금 탈세에 이용된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여기에는 다년간 막대한 보험 판매 실적을 올려 ‘보험왕’으로 불린 유명 보험사의 설계사들이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보험 가입 대가로 억대 금품을 가입자에게 제공한 혐의 등(보험업법 위반 등)으로 대기업 A사 소속 보험설계사 B(58·여)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C사 소속 보험설계사 D(58·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B씨는 모 인쇄업체 대표 이모(69)씨가 조성한 200억원 상당의 불법자금을 비과세 보험 400여개를 통해 관리하면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씨의 부인 문모(68)씨에게 보험 가입 대가로 6차례에 걸쳐 3억5천만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2007년 3월 이씨의 보험 200여개를 해약하고 다른 상품으로 변경하겠다고 한 뒤 해약 보험금 101억원 가운데 약 60억원을 빼돌려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투자 용도로 쓴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도 받고 있다.

D씨도 이씨가 가입한 200억원 상당의 보험 200여개를 관리하면서 2005년 10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이씨에게 보험 가입 대가로 2억2천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200억원대 불법자금을 국외로 빼돌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업체의 어음·수표 거래 내역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한 끝에 무자료 거래로 500억원 가량을 조성해 세금을 포탈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가 1992년부터 2008년까지 400억원 가까운 자금을 B씨와 D씨를 통해 각종 비과세 보험 상품 600여개에 나눠 투자, 만기가 오면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는 수법으로 세무당국의 추적을 피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이들 보험설계사 2명은 이씨를 통해 막대한 보험 가입 실적을 올려 ‘보험왕’으로 업계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보험업법상 보험설계사들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소액의 금품을 제외하고는 보험 가입 대가로 가입자에게 금품 등 특별이익을 제공할 수 없다.

경찰은 보험설계사들이 이처럼 보험 가입 대가로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가 보험사-설계사 간 관계가 고용계약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한 만큼 업계 내에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사에 고용돼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보험상품 판매를 중개하고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 위촉 관계”라며 “가입·유지 실적에 따라 업계에서 명성도 얻을 수 있어 이런 행위를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B씨와 D씨는 수사기관 등의 추적을 피하려고 자신들 명의로 계좌를 개설, 보험 가입 대가금을 입금하고서 계좌와 도장, 비밀번호, 신용카드 등을 이씨에게 전달하는 등 치밀한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D씨는 경찰에서 금품 제공 사실을 인정했으나 B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반박자료를 통해 “고객 돈으로 부동산을 구입한 일이 없다”면서 “60억원은 이씨에게 정당한 이자를 지불하고 자금을 관리하며 매달 그의 보험료를 순차적으로 납입하는 데 썼다”며 횡령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어 “이씨의 부인에게 제공한 금품은 보험 가입 대가가 아닌 세무조사 비용 보전을 위한 것으로 경찰에서 충분히 소명했고 이씨와 거래를 시작하기 전 이미 회사에서 ‘올해의 보험왕’에 선정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은 이씨에 대해서도 법인 매출자금 37억원을 개인 용도로 쓴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씨의 조세포탈 자금 500억원을 확인했으나 연간 포탈세액이 3억원을 넘지 않아 형사처벌이 불가능해 500억원 가운데 공소시효가 남은 200억원 가량에 대해서만 국세청에 과세 통보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씨가 2011년 캐나다로 234억원을 빼돌린 사실도 확인했으나 그가 캐나다 영주권자여서 재외동포의 경우 불법자금도 본인 명의 재산임을 입증하면 국외 반출할 수 있다는 외국환 거래규정상 이를 제재할 근거가 없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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