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고층 아파트 화재…경비 1명이 알아서 하라?

한밤중 고층 아파트 화재…경비 1명이 알아서 하라?

입력 2014-09-15 00:00
수정 2014-09-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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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계획서엔 역할 분담, 직원 퇴근 뒤엔 있으나마나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전한 ‘주먹구구식’ 재난 대처

세월호 사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안전문화 정착을 촉구하는 등 사회 전 부문에서 안전의식 고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주먹구구식 대응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화재발생시 대처요령을 지도점검해야할 소방당국은 “현실적 대책이 없다”며 두손두발 놓고 있는 상황이다.

15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13일 자정께 발생한 광주 서구 쌍촌동 모 아파트 단지 방화화재시 관리사무소 측의 부실대응 정황이 잇따라 드러났다.

13일 밤 11시 53분께 아파트 305동 12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화재경보기가 울렸지만 관리사무소 직원은 이를 오작동으로 알고 곧바로 꺼버렸다.

뒤늦게 육안으로 12층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을 확인한 직원은 이번에는 화재경보기를 켰지만 이내 다시 꺼버리고 직접 불이 난 아파트에 올라가 주민을 대피시켰다.

이 직원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 오작동으로 화재경보기가 울린 줄 알고 주민 민원을 우려, 화재경보기를 껐다가 바로 켰다”며 “주민들이 화재경보기가 울려도 오작동으로 인식해 대피하지 않을 걸로 생각해 직접 올라가 각 가구의 문을 두드려 대피시켰다”고 해명했다.

관리사무소 측의 부실대응은 대피조치에서도 나타났다.

해당 아파트는 화재 발생 시 상황 전파와 신고, 진화 및 입주자 대피계획을 담은 자체 소방계획서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실제 화재가 발생하자 밤늦은 시간 소방계획서 상의 역할이 배분된 직원 대부분이 퇴근한 상태로 즉흥적으로 화재대응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야간에 경비원 1명만 근무하고 있으며 이번 화재 때는 우연히 잔업을 하느라 관리사무소 직원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소방계획서 상의 조치는 대부분 이행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불이 난 아파트로 뛰어올라가 가구마다 문을 두드려 대피를 시켰으나 불이 난 12층 윗 가구는 접근할 수 없었다.

12층 이상에 거주하는 가구는 화재경보음도 듣지 못하고 집안에 머물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옥상으로 대피해 화를 면했다.

관리사무소 측은 부실대응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거짓해명’을 했다는 의혹마저 받고 있다.

애초 아파트 측 직원이 직접 옥상으로 올라가 잠겨 있던 옥상문을 개방, 주민들을 대피시켰다는 해명과 달리 옥상문은 자동개폐기의 작동으로 자동개방됐고, 12층 이상 거주민 대피조치도 소방대원이 했다는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에 대해 해당 발언을 한 아파트 관리소 측은 “잘못 설명한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소방관리자를 지정, 소방계획서를 마련하고 이를 이행하게 돼 있다.

소방계획서에는 화재 전파, 초기조치, 대피조치 등의 내용과 구체적인 실행 지침이 담겼지만 야간에 발생한 이번 화재 때 이들 조치를 실행할 인력이 부족했다.

화재대응 매뉴얼이 실상과 동떨어지게 작성됐고, 대응조치를 실행할 인력도 없어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이에 대해 광주 서부소방서 임근술 서장은 “지도점검을 하고는 있으나 현실 실정을 고려하면 법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데 원칙대로 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난감하다”고 말했다.

결국 소방당국도 부실한 소방계획서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며 유명무실한 지도점검을 반복하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은 “관리사무소 측의 부실대응이 드러나면 업무상 과실로 처벌할 수 있지만 이번 화재는 주민들의 자체적인 신속한 대응으로 피해가 적어 입건을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3일 밤 11시 53분께 광주 서구 쌍촌동의 모 아파트 단지 내 한 개 동 12층에서 방화로 인한 불이 나 불을 낸 A(48)씨와 아내(41)가 온몸에 중화상을 입었고, A씨의 자녀(12) 및 이웃주민 9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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