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의사와 환자의 갈등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의사와 환자의 갈등

입력 2013-06-10 00:00
수정 201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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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 의사는 ‘갑’이었습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으며, 벗으라면 벗고, 입으라면 입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먹으라면 먹고, 굶으라면 굶었으며, 이런 특수관계는 마침내 우리 의식 속에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아야 하는 가혹한 종속의 사각지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권력에 대한 종속’이 의사의 의지보다 주로 환자의 필요성에 의해 형성됐으며, 따라서 ‘목 마른 놈이 샘 파듯’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복종하기로 하고 병원을 찾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환자가 갑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널린 게 병원이니 여기저기 골라서 가는 것은 기본이고, 좀 별난 환자들은 의사를 타고 오릅니다. 한 의사 하소연을 전합니다. “글쎄, 진료실에 들어서더니 대뜸 ‘감기약 좀 세게 처방해 달라’고 조르더라구요. 일단 앉혀서 살펴보니 기침도 그렇고 발열의 양상이 좀 이상해요. 확인 결과 세균성 폐렴이 의심돼 그렇게 말했더니 마치 ‘웃기고 있네’라는 표정을 지으며 바로 나가버리는 거예요. 요샌 환자들 비위 거스르면 인정사정없어요.”

이런 변화를 두고 선악을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자신의 직분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의사는 반대급부로 치료비를 받고, 환자는 병을 치료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의사는 직분의 영향력을, 환자는 돈의 위력을 확대하려는 게 당연하지요. 환자와 의사 간 인식의 간극을 좁히기 어려운 것은 이처럼 견고한 상대성의 관계 때문입니다. 물론 ‘돈, 돈’ 하는 저급한 의사들이 없지 않지만 아직은 ‘질병의 치료’라는 소명의식과 ‘돈’을 최소한 등치라도 시켜보려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사들이 갑질하려 드는 환자에게 눈꼬리를 치뜨는 일, 병원마다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갈등이 오래 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만, 단순히 돈 잘 번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경계하는 건 자칫 자해가 되기 쉽습니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이라고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입니다.

jeshim@seoul.co.kr



2013-06-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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