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소리’ 사전에 골망 흔드는 ‘소리’는 없다

‘두 소리’ 사전에 골망 흔드는 ‘소리’는 없다

입력 2010-07-29 00:00
수정 2010-07-2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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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플레이어들이 공격하러 상대 진영으로 뛰어간 사이, 박소리는 혼자 골문 앞에 남아 종종댄다. 위로 점프도 해 보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다음 상황을 머릿속에 그린다. 덩치 큰 금발선수들이 거침없이 ‘불꽃슛’을 던지지만 무서워할 겨를이 없다. 선방을 하고 나면 또래 소녀들처럼 두 팔을 번쩍 들고 ‘살인미소’를 짓는다. 벤치에 있는 백상서 감독과 동료 선수들에게 뛰어가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할 정도로 쾌감이 짜릿하다는 설명.

박소리는 25일 독일과의 대회 결선리그 2차전에서 슈팅 33개 중 12개를 막았다. 강슛에 얼굴을 맞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골대 앞에 섰다. 박소리의 선방을 앞세운 한국은 일찌감치 4강행을 확정 지었다. 백 감독이 “내 마음속의 MVP는 박소리”라고 할 정도로 빛나는 활약이었다. 27일 ‘세계 최강’ 노르웨이와의 3차전에서도 32개 중 9개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노르웨이는 한국의 끈끈한 수비와 선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국은 예선, 결선리그를 합쳐 대회 8전 전승을 거뒀다.

박소리는 “팔다리가 온통 멍투성이다. 대회 초반엔 발이 안 움직일 정도로 긴장했지만, 계속 하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잘 된다.”면서 “미니홈피에 격려글도 많아지고 관심이 느껴진다.”고 웃었다. 준결승 상대는 ‘우승후보’ 러시아. 몬테네그로와의 첫 경기에 패하긴 했지만 이후 전승이다.

2008년 유스세계선수권 챔피언인 데다, 20세 이하 주니어대회에서도 무려 10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박소리는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슛 몇 개만 걷어내면 동료들이 공격에서 잘 풀어줄 거니까 걱정없다.”고 말했다.

U-20월드컵 4강으로 주목받긴 했지만, 사실 문소리의 인기는 예전부터 뜨거웠다. 175㎝의 늘씬한 몸매와 뽀얀 피부, 정수리 위로 바짝 묶은 머리스타일까지 전부 ‘매력 덩어리’다. 이니셜이 새겨진 축구화부터 경기사진을 모은 앨범까지 선물하는 적극적인 남성팬들도 있다. ‘미녀골키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여자축구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

외모뿐 아니라 실력도 걸출하다. 조별리그 3경기와 8강전까지 네 경기 풀타임을 뛰며 단 4실점(4경기)으로 막았다. ‘세계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미국을 한 골로 꽁꽁 묶었고, 멕시코와의 8강전에서도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해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힘든 골키퍼 포지션임에도 ‘준결승행의 일등공신’이란 찬사를 받았다. 최인철 감독이 드러내 놓고 문소리를 칭찬하기도 했다.

드넓은 그라운드에서 골문 앞에 머물지만 90분 내내 쉴 틈이 없다. 여자축구 특성상 중거리슛이 잦은 편이라 잠깐이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수비라인 위치를 조율하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 골이 터지면 혼자 환호하고, 혼자 방방 뛸 뿐이지만 든든한 수문장이 있기에 필드플레이어들이 마음 놓고 상대 진영을 휘젓는다.

4강에선 ‘전차군단’ 독일과 만난다. 사실상의 결승전. 2004년 태국대회에 이어 안방에서 6년 만에 정상탈환을 노리는 독일을 상대로 한국은 ‘우승’을 외친다. 네 경기에서 신들린 거미손을 자랑했던 문소리는 득점 1위(7골)를 달리는 알렉산드라 포프와 정면으로 맞선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2010-07-29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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