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KAL 피격은 소련의 오인 격추”

“1983년 KAL 피격은 소련의 오인 격추”

이석우 기자
입력 2015-12-25 01:02
수정 2015-12-25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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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건 두달 만에 진상 파악 일본에 알려

1983년 9월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격추한 사건의 대략적인 진상을 미국이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언론은 사건 발생 2개월여 뒤 미국 정부 고관이 일본 정부 당국자를 만나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소련 영공에서 공해상으로 막 나가려던 참에 격추했다’고 말한 기록이 공개됐다고 24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런 기록은 이날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외교 문서에서 확인됐다.

보도에 따르면 1983년 11월 14일자로 작성돼 ‘극비’로 분류된 메모는 ‘소련 측은 미국 정찰기 항적에 약 15분 후에 들어온 대한항공기를 미국기로 오인했다’는 미 정부 고위 관료의 발언을 담고 있다. 이 관료는 ‘소련의 레이더 3대 중 1대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소련 측이 오인한 이유를 설명했으며 ‘미사일이 2발 발사됐고 대한항공기가 11분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급하강하다가 추락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문서에 기재돼 있다.

공개된 외교 문서와 관련해 다수의 일본 언론은 미국이 조기에 일본에 상세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아사히 신문은 당시 미국이 이런 오인 격추 사실을 파악하고도 ‘민간기인 것을 알고도 공격했다’며 소련을 비난했다고 전했다. 이는 미·소가 대립하던 냉전시기에 미국이 대외적으로 정보 조작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메모가 작성될 당시 일본 외무성 인사과장이었으며 나중에 최고재판소(대법원) 판사를 지낸 후쿠다 히로시80)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나의 기록이다. 미국 정부의 상당한 고관에게서 들은 내용이지만 상대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정부도 소련이 민간기를 의도적으로 노렸다는 견해를 취했으나 이에 관해 후쿠다는 “민간기라고 알고서 격추할 정도로 소련이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회고했다.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여객기는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사할린 서쪽 해상에 추락해 승무원 29명과 승객 240명 등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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