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귀신실록】김용관 지음·돋을새김 펴냄
“과인이 즉위한 뒤 불행히도 경운궁에 변고가 생겨 억지로 창덕궁으로 옮겼는데, 피해 갈 곳 역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창경궁을 수선하라고 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창경궁 공사가 막 끝나자마자 요귀의 재앙이 이 궁에서 먼저 일어나더니 창덕궁에까지 옮겨지고 말았다. 요귀가 작란하는 곳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근래 동궁에 또 요괴스러운 변고가 일어났는데 옮길 만한 곳이 없어 그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다.”-1618년(광해 10년) 5월16일.정사(正史)를 다루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에 의외로 귀신이나 기이한 사건들과 관련한 기록이 많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실록’에까지 기록됐다면 당시엔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는 뜻일 터다.
‘조선왕조 귀신실록’(김용관 지음, 돋을새김 펴냄)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귀신 혹은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조선왕조의 어두운 이면을 살펴본 책이다. 부엉이 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태종 이방원부터, 귀신놀이를 즐긴 세조, 새 별궁을 지어 계속 옮겨 다녔던 광해군,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여인들의 한이 서린 창경궁 통명전에 이르기까지 왕과 궐 안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귀신들의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1398년(태조 7년) 8월 26일, 이방원이 정도전 등 개국 공신들을 살해한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다음 날엔 계모 신덕왕후에게서 태어난 세자 방석과 그의 형인 방번이 살해당한다. 그리고 10여일이 지난 뒤 태조 이성계가 거처를 옮긴다. 그런데 그 이유가 특이하다. 밤에 부엉이가 울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후로도 부엉이들이 자주 경복궁에 날아들었고, 그때마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 정종 이방과와 태종 이방원 등은 부엉이를 피해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 다니게 된다. 특히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무섭지 않다고 했던 이방원이지만 부엉이만은 끔찍하게 무서워했다. 죽은 자신의 계모 신덕왕후가 환생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태종이 부엉이를 피해 많은 별궁을 지어 옮겨 다닌 것도 그런 까닭이다. 1만 2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11-02-12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