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입력 2012-03-04 00:00
수정 2012-03-0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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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00m 달리기를 22초에 주파하는 엄청난 기록의 소유자입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회나 체육대회를 할 때마다 달리기가 제일 싫었습니다. 혼자 뛰면 1등이고, 둘이 뛰면 2등, 다섯이 뛰면 5등을 하는 제 달리기 실력은 모처럼 학교까지 행차하신 부모님 앞에서 도무지 체면이 서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보다 두 살 많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언니는 육상부였습니다. 그러니 더욱 창피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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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육상부 코치를 겸했던 체육 선생님은 육상부원을 뽑기 위해 체육 시간에 학생들을 두 명씩 짝지어 100m 달리기를 시켰습니다. 어느 한 명이 뒤처진다면 그 아이는 드넓은 운동장을 홀로 외로이 뛰어야 하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부끄러움 잘 타는(?) 저는 짝이 된 아이에게 나 달리기 엄청 못한다며 천천히 뛰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의 달리기 실력 또한 마찬가지라며 같은 부탁을 하더군요. 저는 함께할 동지가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고, 호각 소리가 힘차게 울렸는데… 아니, 이 기지배가 배신을 때렸습니다! 호각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번개처럼 뛰쳐나가는 겁니다! 저는 17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빠른 스타트는 보지 못했습니다.

배신감을 느낀 저는 분노의 힘을 담아 미친 듯이 속도를 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는 아주 박빙의 승부를 펼쳤습니다. 결승점이 눈앞에 보일 무렵 우리 둘은 젖 먹던 힘을 다해 전력으로 질주했고, 거의 동시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체육 선생님의 외침, “21초 21!” 허! 그 기지배는 저 못지않은 달리기 실력의 소유자로, 한 번이나마 이겨보겠답시고 배신을 때렸던 겁니다. 그 당시엔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웃고 넘겼지만, 지금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야, 이 기지배야! 이길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심보까지 그따위로 쓰면 못써!”

그렇게 배신의 향연(?)이 끝나고 더욱 민망하게도 저희는 운동장 한복판에서 단둘이 엎드려뻗쳐를 했습니다. 왜냐고요? 둘이서 짜고 천천히 뛰었다며 벌을 받았거든요. 선생님, 억울해요! 저희가 어떤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달렸는지 선생님은 평생을 가도 모르실 거예요. 저희에게 죄가 있다면 달리기를 못하는 죄뿐이라고요!

오고은_ 몹시 추웠던 날, 추위를 즐기기 위해 눈썰매장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산만 한 덩치를 잊고, 어린아이마냥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와서는 삭신이 쑤셔서 울고 있다고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놀 것을, 하며 후회하는 20대(!)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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