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文의 홀대에 한 맺힌 송영길, ‘이재명 핍박론’ 설파하는 까닭은

親文의 홀대에 한 맺힌 송영길, ‘이재명 핍박론’ 설파하는 까닭은

이민영 기자
이민영 기자
입력 2022-01-12 18:22
수정 2022-01-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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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정권교체’ 이어 ‘이재명 핍박’ 들고 나와
‘정권교체’가 ‘정권재창출’ 보다 높은 점 노려
이낙연 전 대표 이어 윤영찬, 김종민, 신동근 반발
2017년 文 승리 기여했는데 북방경제협력위원장 그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미래국가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5  국회사진기자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미래국가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5
국회사진기자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나 친문(친문재인) 인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가는 게 큰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의전적으로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송 대표보다 경력이 한참 짧은 국회의원의 자리는 헤드테이블 쪽에 지정하고 송 대표의 자리는 구석에 배치하기, 송 대표를 후배 정치인보다 늦게 소개하기, 송 대표의 후배 정치인에게는 발언 기회를 주고 송 대표에게는 안 주기, 행사 후 단체로 기념촬영을 할 때 송 대표는 단상에 부르지 않기 등이다.

송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의 한 의원은 12일 “한번은 기념촬영을 할 때 사회자가 송 대표 이름을 안 불러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을 발견한 문 대통령이 ‘왜 안 나오느냐. 어서 나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며 “공개 석상에서 의전적으로 홀대를 받을 때 그 굴욕감은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송 대표가 평소 입바른 소리를 자주 해서 친문한테 미운털이 박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친문에 대한 송 대표의 한(恨)은 2018년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그는 2017년 대선에서 선거대책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문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지만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맡는 데 그쳤다. 학창 시절 외교관이 꿈이었고 당내 외교통으로 평가되던 송 대표는 외교부 장관을 희망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돌았다. 그런데 그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자리마저도 1년도 안 돼 포기해야 했다. 송 대표가 2018년 8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 출마하려고 했더니 청와대에서 “대표 경선에 나갈 거면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사임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송 대표의 한 측근은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별로 눈에 띄는 자리도 아니고 정치적인 자리도 아닌데 굳이 사임을 요구했으니 송 대표 입장에선 서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송 대표는 위원장 자리를 내놨고 대표 경선에서도 2위에 그쳤다. 이 측근은 “그 이후 (지난해 5월) 당대표가 될 때까지 송 대표는 4~5선 중진 의원임에도 행사장에 가면 말석인 경우가 허다했고, 친문 초선 의원보다 자리가 뒤쪽인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런 배경을 알면 송 대표가 전날 MBC와의 인터뷰에서 설파한 ‘이재명 핍박론’의 맥락을 이해하기 쉽다. 송 대표는 “이 후보는 문재인 정부에서 탄압을 받던 사람”이라며 “거의 기소돼서 (정치적으로)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2018년 지방선거 과정에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친문에 개인적인 한을 갖고 있는 송 대표가 이 후보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송 대표는 “(이 후보의 당선은) 정권 교체에 상응할 만큼의 새로운 변화된 새로운 정권을 만드는 것”이라며 문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송 대표의 발언이 나오자 친문들은 발끈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 후보를 탄압했다는 송 대표님의 말씀은 아연실색”이라고 했다. 김종민 의원은 “이 후보가 문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니, 도대체 이런 왜곡이 어디 있나”라며 “민주당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신동근 의원은 “송 대표가 뜬금없이 이 후보가 탄압받았다고 한 발언은 당의 단결을 저해하는 뜨악한 것”이라며 “사적인 감정이 공적인 행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자제력을 발휘할 때”라고 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이날 국가비전·국민통합위원회 혁신 비전회의 기조발언에서 “선거 기간이라 그렇겠지만 제가 몸담고 있는 민주당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취까지도 사실과 다르게 평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것은 잘못”이라며 문 정부와의 차별화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물론 송 대표의 이재명 핍박론을 순전히 개인적 한의 발로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송 대표의 정치적 계산으로도 ‘이재명 당선=사실상 정권교체’ 논리는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법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높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지금 다리 수술로 한 달 넘게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며칠 전엔 휠체어에서 내려 의자에 앉다가 엉덩이를 찧어 꼬리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 이 후보보다 일정이 더 많은 날이 허다하다. 주위에선 일정을 좀 줄이라고 권유하지만 송 대표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후보는 이날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서 탄압받았다’는 송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무슨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하신 말씀은 아닌 것 같다”며 “그러니 적절히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어 “송 대표가 검찰의 수사권 남용 얘기를 하시다가 약간 지나치신 것 같다. 약간 (도를) 넘으신 것 같다”며 웃었다. 송 대표를 향한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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