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서 주차는 내가’ 하다가 자칫 인명사고까지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할 때 주차를 앞두고 대리기사로부터 섣불리 자동차 열쇠를 넘겨받았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집 앞에 다다르면 미안해서, 또는 번거로워서 주차를 직접 하려던 운전자들이 크고 작은 접촉사고를 내거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때로는 끔찍한 인명사고로 연결되기도 한다.
연말 송년모임 후 대리운전을 이용할 때 대리기사가 집 근처까지만 차량을 운전하고 주차를 하지 않고 가려고 해도 적극적으로 주차까지 부탁해야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작년 12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술자리 후 대리운전을 부른 50대 남성은 기사가 집 주차장 앞에 차를 세우고 가버리자 직접 주차하려고 운전대를 잡고 차를 10m 움직였다 다른 차와 접촉사고를 내고 면허 취소까지 당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에서는 대리운전을 불러 귀가한 40대 여성이 아파트 입구에서 기사를 돌려보내고 차를 주차 구역에 세우고는 시동을 켠 채 변속기어를 ‘주행’에 놓고 하차하다 차체와 아파트 기둥 사이에 끼어 숨지기도 했다.
유명인도 괜스레 대리기사를 돌려보내고 직접 주차하려다 종종 구설에 휘말린다.
LG트윈스 소속 야구선수 정성훈은 올 8월 술에 취한 채 대리운전으로 서울 잠실 집까지 왔지만 지하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자 배려 차원에서 대리기사를 먼저 보내고 직접 주차하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단속됐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음주운전 사고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10월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택을 130m 정도 남겨두고 대리기사를 돌려보내고는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가 났다. 그는 당시 음주 상태에서 차를 몰고 10m를 가다가 접촉 사고를 냈고, 이후 120m를 더 운전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조 전 수석은 집 근처 대로변에 차를 세우게 하고는 대리기사에게 ‘집도 다 왔고 기사 일도 바쁘니 내가 끌고 가겠다’고 하면서 대리기사를 그냥 보냈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안이라고 해서 마음 놓고 음주운전을 했다가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아파트 단지나 대학 캠퍼스, 식당 주차장 등 차단기로 외부와 구분이 명확히 된 곳은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니어서 행정처분을 받지 않지만 경계가 확실치 않으면 어김없이 면허 정지 등 처분은 물론 형사처벌도 받는다.
29년간 경찰로 재직하며 승진을 앞뒀던 한 경찰관은 올해 초 음주 후 집으로 돌아오다 대리기사와 요금 문제로 다투고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직접 350m를 운전했다가 적발돼 징계를 받고 눈앞의 승진도 물거품이 됐다.
대리 기사를 보내고 직접 운전을 했다면 움직인 거리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고작 20㎝ 운전했다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례도 있다.
교통사고 처리 담당 한 경찰관은 “술을 마시고 운전할 목적으로 차에 시동을 켜고 기어를 ‘D’에 놓는 순간부터 음주운전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울산에서는 음주 후 대리운전으로 집에 돌아와 주차까지 마쳤지만 주차 상태를 바로 잡으려고 차량을 20㎝ 운전한 남성이 요금에 불만을 품은 대리기사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는 일이 있었다.
대리기사가 홧김에 자동차를 길 한복판에 세우고 떠나버린 상황에서 차를 운전하던 차주가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2013년 11월 40대 남성과 차량이동 경로 문제로 다투던 대리기사가 경기도 분당의 도로 중간에서 갑자기 하차해 버렸다. 이 남성이 어쩔 수 없이 차를 직접 도로변으로 이동시키다 대리기사가 신고해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이 남성은 1심에서는 벌금 150만원에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고, 항소심에서는 ‘긴급피난’ 상황이었다며 아예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번거롭고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도 대리운전 기사가 주차까지 완료하는 것을 보고 자동차 키를 넘겨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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