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VO 제공
지난 11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21~22 V리그 남자부 현대캐피탈과 OK금융그룹의 경기 2세트는 경기 내용보다 현대캐피탈의 두 차례 작전타임이 더 화제가 됐다. 보통의 작전타임과 달리 최 감독이 벤치로 들어오려는 선수들을 돌려세웠기 때문이다. OK금융그룹이 5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16-8의 테크니컬 타임아웃 상황에서 그러더니 이후 19-12가 됐을 때 최 감독은 직접 작전타임을 부르고도 말없이 손짓하며 선수들을 또 벤치로 못 들어오게 했다.
작전타임 때 감독이 침묵하는 건 낯선 장면이었지만 선수들은 멍하게 서 있는 대신 서로를 다독이며 자신들만의 작전타임을 가졌다. 효과는 굉장했다. 아쉽게 1, 2세트를 내준 현대캐피탈은 마치 각성한 것처럼 나머지 3, 4, 5세트를 내리 따내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최 감독은 12일 “아무래도 작전타임은 상황이 안 좋을 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잔소리를 할까 봐 그랬다”면서 “경기가 안 될 때 선수들이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게끔 뭉쳤으면 했다”고 전날 일을 떠올렸다.
‘웅버지’(최태웅+아버지)란 별명답게 평소 작전타임 때도 배구를 넘어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을 전하는 최 감독이 이제는 ‘침묵’이라는 새로운 가르침까지 들고나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말을 통해 얻는 깨달음과 말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깨닫고 성과를 이루는 것은 또 다르다. 최 감독도 “선수들이 제 의도와 메시지를 잘 눈치챈 것 같다. 전광인을 중심으로 잘 뭉쳤다”고 웃었다.
허수봉도 “선수들끼리 코트 안에서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셨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했을 정도로 최 감독과 선수들은 석가모니와 마하가섭 못지않은 환상의 호흡을 뽐낸다. 지난 시즌부터 리빌딩에 돌입한 현대캐피탈의 성적은 현재 중위권(5위)에 머물고 있지만 때론 침묵으로, 때론 명언으로 인생을 가르치는 최 감독과 선수들은 V리그의 색다른 볼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