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글로벌 특허전쟁… 한국 살길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특허전쟁이 격화되면서 특허 리스크가 기업들의 기술개발과 성장동력 발굴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의 연구·개발 의지를 높여 기술 혁신을 이끌어 내야 할 특허가 되레 막대한 소송비용으로 기업의 역량을 분산시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23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구글노믹스’의 저자인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제프 자비스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혁신과 성장이 아닌 단지 소송을 막기 위해 사용된 비용이 미국에서만 올해 180억 달러(약 20조원)에 달한다.”며 현재의 특허 시스템을 비판했다. 기업들이 특허 방어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쓰다 보니 생산 활동 및 연구·개발(R&D) 등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 8월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하는 데 쓴 비용은 125억 달러. 모토롤라 같은 세계적인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두 번 가까이 살 수 있는 엄청난 돈이 생산 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특허전문 변호사들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글로벌 특허전쟁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IT 업계의 경우 소송 비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업체들이 특허전에 주로 이용하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경우 일단 소송을 시작하면 두 업체 모두 1000만 달러(약 115억원)가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IBM이나 애플 같은 ‘거물’일 경우 최고의 특허 전문가들로 이뤄진 ‘드림팀’ 변호인단을 꾸리는데 이 경우 3000만~4000만 달러까지도 치솟는다.
삼성과 애플의 사례에서처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송을 진행할 경우 시간과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현재 9개 나라에서 30여건의 소송을 진행 중인 두 회사는 지금의 소송을 마무리 짓는 데만 각각 2억 달러 이상을 써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업체의 경우 특허권 침해 여부와 무관하게 특허 소송에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소송 비용으로 파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IT 업계가 막대한 비용을 불사하며 전쟁에 나서는 것은 기술 혁신의 속도가 빠른 산업 특성상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콘텐츠 서비스 등 전체 IT 산업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혁신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하이브리드자동차와 가전, TV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기기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국내 업체들이 서둘러 특허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특허전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기업들이 특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국제적인 표준 기술을 많이 개발해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소송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대섭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시장과장은 “기술 개발을 할 때 늘 특허를 염두에 두는 ‘특허경영’을 해야 한다.”면서 “연구·개발할 때 표준화에 중점을 두고 국내 기술이 국제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태윤 전국경제인연합회 미래산업팀장은 “특허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에서 기술을 개발한 뒤 기업으로 이전되는 특허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대섭 과장은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의 특허 기술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지영·김승훈기자 superryu@seoul.co.kr
2011-10-24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