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 훈련소에 간 친구/정서린 경제부 기자

[女談餘談] 훈련소에 간 친구/정서린 경제부 기자

입력 2010-06-05 00:00
수정 2010-06-05 00:2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친구가 ‘훈련소’에 갔다. 새벽 6시30분이면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휴대전화도 압수당하고 2주에 한 번씩 주말에만 집에 올 수 있다. 심지어 앞으로 2년간은 인륜지대사인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런 혹독한 규정을 내세운 훈련소라니!

이미지 확대
정서린 경제부 기자
정서린 경제부 기자
이 ‘훈련소’에 들어가기 위해 친구는 5년째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매년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기업으로 꼽는 곳이다.

친구가 들어간 ‘훈련소’란 개발도상국에 교육, 의료활동 등을 펼칠 100여명의 민간 봉사 인력들이 현지문화와 언어교육 등을 받는 곳이다.

훈련을 마치면 그녀는 2년간 홀로 필리핀의 한 외딴섬에서 지내야 한다. 자신이 공부했던 관광 비즈니스를 섬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마땅한 밥벌이가 없어 신산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밥벌이를 만들어주러 가는 것이다. 이토록 신성하고 엄숙한 임무를 띠고 있어 몸과 마음을 담금질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던 친구가 열흘 만에 ‘훈련소’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친구는 ‘내가 대체 뭘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딱 두 번 했다고 했다. 그녀의 결심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던 나는 미안한 감정이 먼저 밀려왔다.

친구가 계속 회사를 다녔더라면…. 남 부럽지 않은 회사에서 매월 또박또박 들어오는 월급을 받으며 여유로운 중상류층으로 늙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아이, 여자 나이 서른 하나에 팔자에 없는 훈련소 생활을 하는 것도 억울한데 창창한 미래를 2년이나 담보(?)로 잡힌 꼴이 아닌가.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친구의 마지막 말이 나를 안심시켰다. “사람이 갇혀 있으면 정작 큰 그림을, 큰 목표를 바라보지 않고 시야가 좁아지더라고. 그래서 훈련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지 않으려고 무한히 노력 중이야. 크게 생각해야지. 잘해보리라….”

인생의 변곡점을 스스로의 힘으로 빚어낸 친구에게 응원을 보낸다. “더 많은 가능성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말로.

rin@seoul.co.kr
2010-06-05 26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남북 2국가론’ 당신의 생각은?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최근 ‘남북통일을 유보하고 2개 국가를 수용하자’는 내용의 ‘남북 2국가론’을 제안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반헌법적 발상이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잘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