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복장(福將)/곽태헌 논설위원

[씨줄날줄] 복장(福將)/곽태헌 논설위원

입력 2010-06-05 00:00
수정 2010-06-0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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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군 고위관계자들을 평가할 때 으레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이라는 말이 수식어로 따라붙는다. 용맹스러운 용장보다는 머리 좋은 지장이 좋고, 지장보다는 부하들을 감싸주는 덕장이 더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덕장보다 더 좋은 것은 복장(福將)이다. 말 그대로 복이 많고 운이 좋은 장수다. 지혜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용감한 것 같지도 않은데 전쟁만 하면 이긴다. 운 앞에는 장사가 없다. 지나친 운명론인지는 몰라도 관운(官運), 재운(財運)이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선거에서도 운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 돈봉투 선거라는 말처럼 돈이 중요했다. 조직도 중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람’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바람 앞에는 선거운동이 필요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평화민주당의 김대중(DJ) 후보는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 통일민주당의 김영삼(YS) 후보에 이은 3위에 그쳤다. DJ가 기사회생한 것은 다음해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황색바람’이었다. 평화민주당은 70석을 차지하며 통일민주당(59석)을 누르고 제1야당이 됐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의 ‘충청도 핫바지론’을 업고 자민련 후보들이 충청권을 사실상 싹쓸이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잘해야 50석 정도를 예상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열린우리당의 함량미달 후보들에게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열린우리당은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그때 초선의원만 108명. 이들은 탄핵바람을 타고 금배지를 거저 얻은 ‘탄돌이’, ‘108 번뇌’로 불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이명박(MB) 대통령의 당선에 따른 정권교체 바람이 이어지면서 능력과 관계없이 한나라당에는 88명의 초선의원, 소위 ‘MB 칠드런(children)’이 나왔다. 며칠 전 끝난 6·2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심판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야당 광역자치단체장과 시장·군수·구청장이 쏟아졌다.

‘탄돌이’ 상당수가 2008년 선거에서 금배지를 달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요행은 여러번 오지 않는다. 잘나서 당선된 게 아니라 운 때문이었다는 겸손함도 없고 분수를 알지 못하면, 그 다음 선거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게 어디 선거뿐이랴.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2010-06-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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