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욕하는 사회/박대출 논설위원

[씨줄날줄] 욕하는 사회/박대출 논설위원

입력 2011-10-08 00:00
수정 2011-10-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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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삼놀이는 충청도 풍속이다. 정월 대보름날 민속놀이다. 횃불은 짚으로 만든다. 양편으로 나눠 때리고 넘어뜨린다. 횃불이 엉키면 장관을 연출한다. 기세 싸움엔 갖은 욕설이 동원된다. 한쪽에서 ‘술렁수’하면 상대쪽에서 ‘꼴래꼴래’로 맞선다. 성(姓)씨를 앞세우기도 한다. ‘김강아지야 덤벼라’ ‘이강아지야 덤벼라’ 등. 항복하거나 횃불이 소진되면 멈춘다. 동국세시기 상원조(上元條)에 기록돼 있다. 이때만 해도 욕설은 애교 수준이다.

욕설은 늘 가까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그런데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그것도 악성으로 진화 중이다.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욕하는 사회’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지경이다. 어른들이 가르치고, 아이들은 배운다.

‘damn’은 ‘빌어먹을’ ‘제기랄’을 뜻한다. 미국 영화에는 1939년 등장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시초다. 이후 비속어나 욕설 영화가 늘었다. 1990년부터는 둑 터지듯 했다. 그해 ‘좋은 친구들’엔 246회에 이른다. 이듬해 ‘정글 피버’는 292번에 달한다. 우리 영화도 비슷하다. 조폭 영화들이 유행처럼 번졌다. 2001년 ‘친구’가 불을 붙였다. 요즘엔 욕설은 아예 코미디·폭력 영화의 기본 메뉴다.

‘욕설로 대화하는 한국 영화’. 이달 말 발표될 논문 제목이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윤영민 교수와 박사과정 김정선씨가 연구했다. 윤 교수 등은 청소년 관람가 영화 60편을 분석했다. 성인 영화와 다를 게 없다. 10년간 욕설과 비속어가 2.4배 늘었다. 편당 45.6회에 이른다. 내용은 글로 옮기기도 민망할 정도다.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 언어사용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가 놀랍다. 청소년 73.4%가 매일 욕설을 한다. 두 통계는 무관하지 않다.

언어는 좌뇌(左腦)가 맡는다. 이상이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다. 뇌졸중도 그중 하나다. 환자는 대개 언어장애를 겪는다. 회복할 때 특이한 게 있다. 욕설부터 내뱉기 일쑤다. 가장 기억해 내기 쉽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욕설은 원초적인 언어다. ‘욕하는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나쁜 학교다. 영화는 그중 으뜸이다. 600만, 1000만 관객 시대다. 파급력이 셀 수밖에 없다. 성장기 청소년에겐 더하다. 그들의 좌뇌에 끊임없이 욕설을 주입시킨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를 막을 권한이 있다. 그런데도 좀처럼 ‘가위질’이 없다. 심의제도는 리얼리티, 표현의 자유 앞에 무력하다.

청소년에게 가는 말이 곱지 않다. 그들로부터 오는 말이 고울 리가 없다. 가위질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내일 한글날이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2011-10-0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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