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잔소리 메모/주병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잔소리 메모/주병철 논설위원

입력 2011-10-31 00:00
수정 2011-10-3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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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메아 월프 부인은 너무나 잔소리가 심했다. 남편은 잔소리에 시달려 죽었는데, 그 여자는 남편이 죽고 난 뒤에 비로소 그 죄를 보상하려고 남편의 초상을 자기의 혀에다 입묵(入墨)했다. 1927년 스페인의 헤레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잔소리를 미덕으로 여기는 나라는 없을 테다. 충고든, 간섭이든, 넋두리든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못하는 게 잔소리지만 ‘이렇게 해라.’, ‘이러면 좋을 것이다.’ 등의 얘기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면 짜증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잔소리를 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여자와 함께 베이징 오리고기라든지 상어 지느러미와 같은 일품 요리를 먹기보다는 차라리 안락한 분위기에서 핫도그를 먹는 편이 훨씬 유쾌하다.”(C M 슈와브) “나는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훌륭한 인사들과 접촉해 왔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잔소리를 듣고 일할 때보다 칭찬을 듣고 일할 때가 일에 열의도 있고 성과도 좋은 법이다.”(D 카네기)

가히 잔소리의 최대 피해자를 자처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빼놓을 수가 없다. 소크라테스는 아내 크산티페의 잔소리에 대들지 않고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크산티페는 처자식을 다섯이나 거느리면서도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무능에 화가 나 물을 퍼붓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까지 제자한테 수업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말로 천하의 한량이자 백수였다. 양처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게다.

하지만 안네마리 노르덴의 성장동화 ‘잔소리 없는 날’은 잔소리가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란 걸 말해준다.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 넌더리가 난 푸셀이 딱 하루 잔소리 없는 날을 보냈는데, 잔소리만 없으면 잘될 것 같았던 계획들이 난관에 부딪힌다. 결국 엄마와 아빠의 자상한 배려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잔소리의 힘을 느낀다.

얼마 전 법원이 전업주부 아내에게 수시로 ‘바지 주름을 한 줄로 다려라.’ ‘음식 빨갛게 하지 말 것’ 등 잔소리 메모를 남기고 문자메시지로 살림살이를 지적한 남편의 행동은 이혼 사유가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잔소리에 메모까지 더했으니 아내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렀으리라. 잔소리는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에게나 지나치면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 ‘맞춤형 잔소리’ 매뉴얼이라도 만들면 어떨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1-10-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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