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4년
가령 지난 22일 겨우 타결된 정부조직법 개정 소식을 살펴보자. 쟁점이 됐던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정보통신기술 진흥 기능이었다. 오랜 갈등을 거친 끝에 지상파방송의 허가·재허가권은 방송통신위에 그대로 두고,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사업변경 허가는 미래부가 주관하되 방통위의 사전동의를 받는 안으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사건에 대한 신문의 보도는 대략 이러했다. ‘한 당의 원내대표가 회담을 제의했으나 상대편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오후 11시쯤 협상에 실패한다. 다음 날 청와대에서 무언가 기자회견을 한다. 또다시 협상이 시작된다. 실패한다.’ 갈등이 이어지던 몇 십일간, 대부분의 매체가 연일 보도했던 것은 이 세 줄로 요약됨이 전부다.
똑같은 기사를 그렇게 많이 읽으면서도 나는 아직 ‘진짜 쟁점’이 무엇인지, 이 협상이 제대로 잘 이뤄진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정부의 방송 장악 계획이다, 야당이 정보통신기술(ICT) 업무를 분리해 새 정부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 혹은 정치력의 문제다…그 긴 시간 동안 기사를 정독했음에도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것이 다였다. 실제로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떠하며 그것이 어떤 장단점을 갖는지는 결코 알 수 없었다. 정부조직법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요즘 들어, 시간을 들여 긴 기사를 읽어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목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의 서울신문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다. 서울신문은 요즘 장기 연재와 기획 등을 통해 비교적 심층적인 보도를 해내고 있다. 3월 23일자 커버스토리인 ‘협동조합’ 기사나 ‘경찰 지구대 24시 체험기’, 2면 ‘성 접대 의혹’ 관련기사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정치권의 동향을 보여주거나, 달라진 점이 없음에도 어제 있었던 일을 오늘도 관성적으로 다루는 정도다. 다른 언론과 전혀 차이가 없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이것들은 심지어 새로운 정보도 아니다. 신문을 집어 들기 전날 밤부터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시대이지 않은가. 컴퓨터 활용 보도(CAR)와 같은 탐사보도 기법이 사용되는 때에 단순하기만 한 팩트 보도는 힘이 아닌 직무유기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는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과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알아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알아야 하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 독자가 빽빽한 지면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창백할 뿐인 신속성이 아닌 다른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힘이자 언론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었던 팩트가 과연 지금과 같은 핏기 없는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2013-03-27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