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고동소리] 제주 제2공항의 상투성

[황규관의 고동소리] 제주 제2공항의 상투성

입력 2019-02-27 17:20
업데이트 2019-02-2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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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 시인
황규관 시인
제주도와 국토부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건설하려는 제2공항 문제로 제주도는 최근 가장 핫(?)한 곳이 됐다. 사실 제주도와 국토부의 논리는 그 세세함을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냥 상투적인 개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이 막무가내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듯이 말이다. 제주도는 최근 제2공항 문제뿐만 아니라 비자림로 확장 공사 문제, 영리병원 개원 문제로 조용할 날이 없는데, 여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듯 보인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줄곧 지켜보고 나서 발견한 개념으로 알려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서 ‘평범성’을 뜻하는 ‘banality’는 진부함, 상투성의 뜻에 더 가깝다고 한다. 풀어 말하면 악은 기왕의 습관, 옳음, 상식에 대한 물음이나 회의를 배제한 상투적인 사고의 결과라는 것이다.

제주도는 이미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 쪽으로 가는 중산간 지역에 ‘헬스케어타운’ 개발을 중국 자본에 허가해 주었다. 이게 오늘날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이 되려 하고 있는 애벌레였다. 박근혜 정권 때 일이나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권이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강정 해군기지는 노무현 정권 때 시작돼 이명박 정권 때 일단락됐고, 영리병원 문제와 제2공항 문제는 박근혜 정권 때 시작돼 현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3 70주년 추념식 때 국가폭력을 사과하고, 4·3은 대한민국 역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위해 제주 섬사람들을 학살한 가해의 역사이며, 제주 섬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에 대한 저항의 역사다.

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국가 입장에 서곤 하지만, 국가 바깥에서 보면 국가의 역사란 결국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국가가 우리의 실존을 강제하고 있는 현실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역사를 그냥 내면화하고 마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번민을 덜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근대 국가는 누구의 국가인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자본을 위한 국가이며 완곡하게 말해도 국가는 경제성장을 위한 추동 장치의 성격을 아주 많이 갖는다.

제주도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져서 현재 제주공항의 수용 능력으로 실제 감당이 되는지 어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에 대한 세밀한 데이터는 나 같은 사람의 뇌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주도 자체가 그 방문객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항 문제를 떠나 제주도 사람들의 삶이 수많은 ‘손님’들의 방문에 힘들어한다는데 그보다 합리적인 제2공항 건설 여부의 척도가 있을 수 있는가? 무언가를 속이려고 하거나 또 다른 노림수가 있는 측의 말은 대부분 번다하고 논리가 복잡하다. 진실을 가급적 은폐해야 그 위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짓고, 짓기 위해 다른 존재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그것을 건설이라고 말한다. 훼손을 보호라고 속이며, 비참을 풍요라고 부른다. 백번 양보해서 그 사업이 타당성을 갖는지 묻지도 따지도 않는다. 2019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자성어(?)인 ‘예타면제’만큼 그것을 상징하는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국가의 개발 사업은 언제나 돈의 문제다. 당장의 지원금이든 개발 이후의 경제 효과든 어쨌든 돈으로 주민들을 나누고 공동체를 교란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혼란을 언론은 ‘찬반으로 갈리다’라고 부르며, 전문가들은 원인과 맥락이 삭제된 저울을 제시한다.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이라는 지독한 망상장애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만한 ‘절대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성장’이라는 괴물을 괴물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뿐이 아니라 학문도, 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즉 아무 물음 없는 상투적인 사고(다른 말로 하면 사고하지 않는 사고)라면 어쩔 것인가? 이미 그 결과는 차고 넘치다 못해 우리를 지치게 하지 않는가?
2019-02-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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