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원 좋은세상] 결혼축의금 10년후 금지한다면?

[강지원 좋은세상] 결혼축의금 10년후 금지한다면?

입력 2011-05-26 00:00
수정 2011-05-2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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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대표
강지원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대표
우리나라에서 지인의 결혼식에 돈봉투를 들고 찾아가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접수대를 놓고 돈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풍토를 쉽사리 비난할 수도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풍토가 과연 바람직한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결혼식 청첩장을 받고 고지서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라 한참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축하해 달라는 쪽지이니 축하를 안 해주면 당장 욕을 먹을 것이 뻔하다. 또 나중에 내 자식 결혼시킬 때를 생각하면 더구나 도리가 없다. 마치 보험 들어 두는 것과 같다. 그러니 할 수 없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사는 대로 인심 잃지 않고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축하를 해주자면 직접 찾아가거나 돈봉투를 건네야 한다. 그런데 돈의 부담이나 시간의 낭비가 너무 크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함께 안 하면 된다. 그렇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법으로 정해야 된다. 모든 축의금 수수행위를 법으로 금지시키는 것이다. 과거의 가정의례준칙이 생각날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하면 되긴 된다. 그러나 그것을 당장 실시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법으로 당장 모든 축의금의 수수를 금지한다고 하자. 난리가 날 것이다. 결혼을 앞둔 가정의 불평이 가장 클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갖다 바친 것이 얼마인데, 이제 내가 받아야 할 차례가 되자 못 받게 한다고? 게다가 요즘처럼 혼수비용이 많이 드는 때에 어찌하라는 것이냐고 화를 낼 것이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방법이 있다. 향후 10년 후, 예컨대 2022년부터 금지한다고 예고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 될까. 온 국민이 거기에 맞춰 머릿속에서 수지타산을 맞춰 볼 것이다. 그때까지 집안에 혼사가 있을 것 같으면 타인의 혼사에도 부지런히 참여할 것이고, 그때까지 없을 것 같으면 축의금 내는 것을 대충 조절하기 시작할 것이다. 혼수품도 늘 말썽이다. 불필요한 혼수 금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의 일탈적 혼례 관행은 확실히 개선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의 축의금 관행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서로가 부담감을 뻔히 느끼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개선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개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소위 권세 있다는 사람들의 호화판 결혼식이다. 수백명, 수천명이 득실거리는 이런 결혼식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 아니라 당사자인 자식들에게도 결코 좋은 교육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부끄러운 꼬락서니를 몰라라하고 마치 위세자랑이라도 하듯 떵떵거리고 서 있는 모습은 실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돈봉투까지 받아? 사실 ‘그 놈의’ 돈봉투는 윗사람에게 가는 것일수록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의 착취구조까지 띠고 있는 셈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혼례가 한 동네의 잔치마당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중심의 혼례가 되어야 한다. 양가의 일가 친척과 특별한 지인들만의 축하연이 되어야 한다. 돈봉투 놓고 도떼기시장 같은 곳에서 밥 한끼 얻어 먹고 떠나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다. 상례도 마찬가지다. 초상집은 고인의 지인을 중심으로 추모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정승집 개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드는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 비난까지 할 일은 아니다. 나도 2001년 아름다운 혼·상례를 위한 사회지도층 100인 선언에 서명할 때까지는 그런 인식을 갖지 못했다. 그 후에는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욕도 먹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나부터 실행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법은 10년 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제정하더라도 마음의 준비가 된 이들은 지금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혼사가 많은 5월에 주례 서주러 이곳저곳 다니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다.

2011-05-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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