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같은 성폭행범 구속·불구속 기준 뭔가

[사설] 같은 성폭행범 구속·불구속 기준 뭔가

입력 2011-05-13 00:00
수정 2011-05-1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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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부지방법원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한 여성을 차례로 성폭행한 두 남성의 구속영장에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법원은 그제 국민권익위원회 4급 간부 박모(55)씨의 영장을 기각한 반면 지난 8일에는 모텔 종업원 권모(31)씨의 영장을 발부했다. 영장기각 사유는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 영장발부 사유는 “모텔 종업원은 손님에 대한 일종의 보호의무가 있기 때문에 더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구속이라 해서 죗값을 치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구속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만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박씨는 지난 3일 밤 A씨와 술을 마신 뒤 만취한 A씨를 모텔로 데려가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를 받고 있다. 권씨는 박씨가 정신을 잃은 A씨를 놓아둔 채 귀가하자 방에 몰래 들어가 A씨를 성폭행했다. 박씨는 국민의 권리보호 및 구제를 위한 공기관의 간부이고, 피해자 역시 같은 기관의 직원이다. 상관으로서 마땅히 직원을 보호하고 챙겨야 할 책임을 저버린 박씨의 행위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법원은 “박씨가 이미 직위해제된 상태여서 지위를 이용해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한쪽을 탓하고 다른 한쪽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법원의 설명은 옹색할 뿐이다.

법 앞에 만인(萬人)이 평등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을 새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법과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사건 관련자의 계급이나 지위·신분·개인적 연고 등과 거리를 두는 객관성과 공정성, 형평성이 전제돼야 한다. 눈을 가린 채 검과 거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상(像)이 대법원에 있는 이유다. 법원은 또다시 구속·불구속의 기준이 가난한 자와 약한 자, 부자와 강한 자에 따라 바뀌는 것처럼 국민의 눈에 비쳐지지 않도록 보다 엄정한 자세를 견지하기 바란다.

2011-05-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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