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조급증 떨쳐야 국외문화재재단 성과 낸다/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조급증 떨쳐야 국외문화재재단 성과 낸다/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3-03-27 00:00
수정 2013-03-2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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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논설위원
아테네 한복판에는 고도(古都)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초현대식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다. 스위스 출신의 미국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가 설계해 2009년 개관한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불과 244m 떨어진 곳에 박물관을 짓는다는 구상은 논란을 불렀지만, 그리스 국민은 수긍했다.

파르테논 신전의 상부 조각은 전성기 그리스 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스만튀르크 주재 영국대사를 지낸 토머스 브루스 엘긴이 1801년 이 조각을 해체해 영국으로 싣고 가 버렸다. 그리스를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현재 영국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이른바 ‘엘긴 마블’(Elgin Mables)이다. 그리스 정부는 1982년 외교 루트를 통해 영국 정부에 반환을 요청했다.

영국은 국가 위원회 명의로 거절했는데, 이유의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그리스의 심각한 스모그 현상으로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이 손상될 우려가 있으니 권위 있는 과학적 보존 시설을 갖추고 있는 영국박물관이 보관하는 것이 옳다.’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건립은 영국의 이 어이없는 반환 거부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그리스의 분노에 찬 대안이었다. 완벽한 공조시설을 자랑하는 박물관의 최상층에는 ‘파르테논 마블’을 전시할 공간이 마련됐지만, 영국은 여전히 돌려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 역시 기증이나 자진 반환이 아닌 교섭으로 문화재를 돌려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정부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설립한 것도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단은 지난해 7월 출범한 뒤 원로미술사학자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를 9월에 위원장으로 영입하고, 필요한 최소 인원을 확보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재단은 출범부터 쉽지 않았다. ‘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를 내건 만큼 당초 명칭은 ‘국외문화재환수재단’이었다. 하지만 ‘환수’라는 이름이 찍힌 명함을 들고 나가면 환수는커녕 소장자를 만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 문화재 반환 교섭 경험자들의 이구동성이었다. 간판이 바뀌게 된 까닭이다.

재단 활동의 중심은 우리 문화재가 가장 많이 나가 있는 일본과 미국이다. 두 나라에는 상주할 전문가의 정원을 확보해 적임자를 물색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재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전반적인 한국 문화재 조사 사업도 전 세계로 확대한다. 먼저 올해는 중국에서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문화재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조급증이다. 재단이 출범했으니 당장 성과를 내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벌써부터 없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의 조급증이 자칫 재단의 활동을 산으로 가게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성과를 다그치면 의미 있는 컬렉션을 목표로 장기적인 포부를 세우기보다 작은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박물관 전문가의 충고가 마음에 남는다. “한국 컬렉션을 가진 해외 소장자와의 스킨십이 중요하다. 만날 때마다 애정을 담아 문화재의 안부를 묻되 돌려 달라는 이야기는 먼저 하지 말라. 약탈 문화재가 아니라면 오히려 진심으로 잘 보관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라. 명절이나 생일이면 잊지 말고 선물을 건네라. 컬렉터란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소장품을 물려주고 싶은 법이다. 몇년 뒤가 될지 몇십년 뒤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소장자가 세상을 떠날 때는 컬렉션을 돌려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때까지 참을성 있게 투자해야 한다. 개인은 할 수 없지만, 재단이라면 할 수 있다.”

국가기관이 소장한 대형 컬렉션의 반환은 정상회담이나 그에 버금가는 정부 간 교섭이 아니면 말도 꺼내기 어렵다. 결국 재단 활동은 민간 컬렉션과 개별 유물에 초점을 맞추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조언이다. 당연히 정부 간 교섭의 지원도 재단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dcsuh@seoul.co.kr

2013-03-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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