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감나무집/박록삼 논설위원

[길섶에서] 감나무집/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입력 2019-10-15 17:20
업데이트 2019-10-16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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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학교 갈 때면 늘 책가방 메고 달음박질쳤다. 시간에 쫓기지도 않건만 학교는 왠지 뛰어가는 게 멋진 것 같았다. 아파트 정문을 지나 큰길로 빙 돌지 않고 놀이터 가로질러 가다 보면 그 옆으로 단독주택 몇 채가 이어졌다. 그저 평범한 집이었다. 늘상 눈길도 주지 않고 뛰어가다가도 찬바람 부는 즈음이면 그 집 앞에 잠시 멈추곤 했다. 마당에 주황으로 점점이 박힌 감나무 가지가 담벼락 바깥으로 슬그머니 뻗쳐 나와 있던 탓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뛰어갔다. 한 번도 따먹지는 못했다. 그리 높지도 않은 가지였지만 아이뜀으로 손 닿을 만큼은 아니었다. 돌아서는 어린 목젖이 침을 삼키느라 조금 흔들렸을까.

지난 주말 서초동 근처에 갔다가 대로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어느 병원 주차장 울타리 근처에 키 작은 감나무 한 그루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아직 채 익지 않은 대봉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저 감들 다 익으면 병원에서 몽땅 따 가는지, 그저 길 지나는 이에게 소소한 추억 하나씩 안겨 주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김남주 시인은 노래했다. ‘찬서리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시 ‘조선의 마음’ 전문)라고. 바람이 차가워지니 따뜻한 마음이 더욱 그리워진다.

youngtan@seoul.co.kr

2019-10-16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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