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등불처럼 촛불처럼/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등불처럼 촛불처럼/황수정 수석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24-02-13 01:03
업데이트 2024-02-13 01:03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정월 초하루가 지나면 할머니는 식구들의 한 해 신수부터 챙기셨다. 사주명리에 밝다는 철학관을 아침 일찍 다녀오셨다. 그러고는 행여 잊을세라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식구들 열두 달 운세를 실꾸리 풀듯 와르르 쏟으셨다. 삼월에 구설수, 팔월에 차 조심. 사람 조심, 밤길 조심.

한글도 못 깨치신 할머니가 무슨 수로 그 많은 식구들의 열두 달 운세를 다 외웠는지는 지금도 불가사의다. 할머니가 기억을 더듬거리는 대목은 함께 다녀온 엄마가 곁에서 기다렸다는 듯 매끈하게 채웠다. 그야말로 환상의 복식조였다.

두 여인이 떠난 뒤 나의 정초는 심심하다. 재미없고 쓸쓸해서 우편함을 기웃거린다. 꼬깃꼬깃 액막이 부적이 담긴 봉투가 번쩍 날아왔으려나, 그해처럼 바람처럼.

돌부리에 발이 걸릴까 이맘때만은 사는 일이 외줄타기 같아진다.

“조심하거라.” 아무리 들어도 닳지 않은 그 말을 한번 들을 수 있으면. 달 없는 밤에 등불처럼, 별 없는 밤에 촛불처럼 내 발밑이 환해지겠지.
황수정 수석논설위원
2024-02-13 27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