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시월이 익어 가는 밤

[길섶에서] 시월이 익어 가는 밤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25-10-17 00:49
수정 2025-10-17 01:4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누구에게나 오는 시월은 누구에게나 다른 빛으로 익어 간다. 나의 시월은 궁둥이가 새까만 솥냄비로 익어 간다.

풀모기에 발목을 뜯겨 가며 주워 왔을까. 이즈막 우리집 장독대에는 알밤이 소복한 됫박이 날마다 놓여 있었다. 미끄러지게 물광 나는 풋밤으로도 가을은 움푹움푹 발이 빠지게 깊었다.

저녁상을 일찍 물린 밤에는 마당귀의 솥단지에서 생난리가 났다. 딴 국솥들은 호호 불며 닦았던 엄마는 그 솥단지만은 밑이 그을려 구멍이 나거나 말거나 모른 척. 퉁, 퉁, 냄비 속 알밤이 기어이 껍질째 터지고 말던 소리. 튀는 알밤에 냄비 뚜껑이 저만치 날아간 날도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웃었는지.

거짓말 같은 시월의 판타지, 다정했던 소란. 믿을 수 없는 시월이 있었다.

까맣게 그을리거나 말거나 속이 터지거나 말거나. 득의만만 깊어지던 밤은 다시 왔던가 다시 오지 않았던가. 내가 좋아한 것은 잘 삶아진 알밤이었는지, 둥글둥글 깊어 가던 그 밤이었는지.

생밤을 안쳐 놓고 나도 냄비 궁둥이를 모른 척 태워 먹고 있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시월을 익혀 가고 있는지, 시월 밤을 건너고 있는지.

황수정 논설실장
2025-10-17 3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