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인문학, 스스로 꼬아 올리는 구원의 동아줄/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인문학, 스스로 꼬아 올리는 구원의 동아줄/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입력 2011-10-11 00:00
수정 2011-10-1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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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위기일까? 얼마 전 귀천한 스티브 잡스의 삶이 명증하듯, 인문학자의 위기일 뿐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시리아인 유학생의 핏줄을 받은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다. 그를 걷어 길러준 양부는 노동자였다. 등록금이 없어 리드대 철학과를 한 학기만에 그만둔 그는 주류사회 진입이 어려운 주변인이자 약자였다. 1976년 21살 새파란 청춘에 애플을 공동 창업한 그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개인용 PC시대를 여는 쾌거를 일구어 냈지만, 30살 되던 1985년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퇴출되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그날의 좌절을 회상하며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그의 말은 심금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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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1996년 애플에 다시 복귀한 그는 기술에 영혼을 불어 넣었다. 아이팟(2001년), 아이폰(2007년), 아이패드(2010년). 우리는 통념에 매몰되지 않았던 그가 건넨 선물을 징검다리 삼아 아날로그의 강물을 넘어 디지털의 신세상으로 건너갔다. “소크라테스와 한나절 보낼 수 있다면 난 애플의 모든 기술을 내놓을 것이다.” 그가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IT(정보기술)의 제왕’에 오를 수 있었던 상상력의 원천은 인문학에 있었다. 그에게 인문학은 영감과 지혜의 보물창고였다. 그는 인문학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황금알을 낳는 어미 닭임을 증명해 보였다. 지구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리는 이유는 무얼까? 정상에서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좌절을 모르고 불굴의 응전 의지를 불태워 인류 역사의 진보를 이끈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로 우뚝 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일군 성공의 신화는 우리가 왜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인문학은 사회적 약자들이 꿈을 잃지 않고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고를 뚫고 나갈 힘을 주는 희망의 오아시스로 다가선다.

승자독식의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강자가 되려 한다. 자본의 정글 먹이사슬 가장 위에 위치한 이들은 미국 월가의 인재들일 것이다. 몇 해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부른 이들의 탐욕은 그칠 줄 몰랐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이제 빈부격차 해소와 일자리를 요구하는 도심시위대의 구호는 뉴욕을 넘어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상의 승자들은 몇 해 전 월가가 촉발한 세계적 금융위기를 맞아, 그 주역들을 배출한 하버드대학 전 총장 해리 루이스가 발한 자성의 목소리를 기억해야만 한다.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영혼 없는 수월성(Excellence Without a Soul)”의 추구가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으며, 그 결과 공동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재앙을 초래했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인문학적 소양은 승자들이 물신(物神)의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고 깨어 있게 해주는 성찰의 지혜를 주는 힘이자 영혼의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이기도 하다.

미국의 위기는 남의 집에 난 불이 아니다. 우리 미래를 짊어진 청년들이 ‘88만원 세대’로 자신을 낮추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날로 심해지는 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나아가 인종과 문화가 뒤섞일 수밖에 없는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접어들고 있는 오늘. 세대와 계층, 인종과 성별 등 모든 사회·문화적 울타리를 넘어 지향과 이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인문학적 소양일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영감과 지혜를 주는 보물창고이자, 약자에게 힘을 주는 희망의 오아시스이기도 하며, 영혼이 썩지 않게 지켜주는 소금으로도 다가선다. 종교가 하늘에서 내려주는 동아줄이라면, 인문학은 깨어 있는 주체로서 우리 스스로가 꼬아 올리는 구원의 동아줄이라 할 수 있다. 시민을 위한 인문학,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은 물론 경영자를 위한 인문학과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까지…. 우리 시민사회는 니체가 말한 ‘삶에 봉사하는 인문학’에 목마르다. 이제 인문학자들이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답할 때다.

2011-10-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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