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존재감과 행복한 노후/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존재감과 행복한 노후/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입력 2011-10-26 00:00
수정 2011-10-26 00:3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어머니는 연세가 여든 여섯이다. 몇 년 전에 심장수술을 하셨고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동년배 친구분들에 비하면 건강한 편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며, 보청기 없이 대화가 가능하고, 갈비도 1인분 정도는 너끈히 소화하시며, 기억 등의 인지능력 역시 정상이다. 어머니의 노후생활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지난 이십년간 끊임없이 불평을 해 오셨다. “우두커니 앉아 있기 싫다.”는 것이다. 그것은 “삭신이 쑤신다.”거나 “외롭다.”거나 아니면 “용돈이 모자란다.”는 상식적인 불평보다 훨씬 일관되게 지속되어 왔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언제나 무슨 일인가를 하셨다. 고령의 나이에도 손주를 돌보고 옛날 옷을 꺼내 고치고 하다못해 가구의 위치를 바꾸기라도 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도 요리를 하실 때도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왜 그러시나 의아했다. 어머니 성격 탓이려니 했다.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매일매일 일을 하고 싶어하시는 어머니가 야속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의 불평이 존재감 상실의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안다. “우두커니 앉아 있기 싫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소망의 다른 표현이다. “나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전언의 다른 표현이다.

존재감이란 말은 요즘 우리사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이다. 국어사전은 존재감을 사람이나 사물이 실재로 있다는 느낌이라고 정의하지만 통상 그것은 자아감이나 자존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존재감이란 것은 사실상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그 근원은 플라톤의 ‘국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그리스어의 티모스(thymos)를 언급한다. 혈기, 생명력, 원기, 기개, 등으로 번역되는 티모스를 사회심리학자들은 타인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근원이라 간주한다. 인간은 물질에 대한 욕구와 동일한 정도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아니 노인들이야말로 존재감에 가장 민감한 연령층이라 할 수 있다. 건강도, 경제적 여유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존재감에 신경을 쓴다.

흔히 노인들을 괴롭히는 세 가지 요인으로 질병, 빈곤, 고독을 손꼽는다. 그동안 고령화사회와 관련하여 쏟아져 나온 무수한 연구와 정책들 대부분이 노인 질병관리와 경제적 자립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도 이 점을 반영한다. 그러나 건강과 돈은 행복의 수동적인 조건이다. 수동적인 조건들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능동적인 조건, 즉 존재감 확보가 충족되지 않으면 행복한 노후는 완성되기 어렵다.

노년층이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일자리다. 할 일이 있는 노인은 행복하다. 자신이 무언가에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노인들의 행복감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사실 노인 고용은 그동안 끊임없이 논의되어온 문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인 고용 증진과 고령자친화형 일자리 창출, 노인 창업기회 확대 등이 논의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노인 고용이 소외계층에 대한 선심성 일자리 제공처럼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동기 부여와 목표 설정, 적절한 보상과 성취감 같은 것들이 노인일자리의 수와 종류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로 고려되어야 한다. 노인들의 재취업은 평생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기회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야 존재감과 행복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는 542만 5000명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55세부터 79세까지의 노인 중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거의 60%에 육박한다. 이 수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제 각계의 지혜를 모아 고령자들이 경제적으로 자립도 하고 존재감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고령자 취업문화에 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10월은 경로의 달이다. 노인을 존경하고 우대하는 방법 중 가장 으뜸인 것은 아마도 그의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것이리라.

2011-10-26 30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전북특별자치도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가능할까?
전북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전북도는 오래전부터 유치를 준비해 왔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지난해 ‘세계잼버리’ 부실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상황이라 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전북도의 올림픽 유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