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왕의 선물/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왕의 선물/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입력 2012-06-14 00:00
업데이트 2012-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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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에 일본 교토대학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그 대학 문학부에서 효종이 송시열에게 하사한 ‘주자어류’를 보는 순간, 그 내사본(內賜本)은 국왕이 신하와의 공치(共治)를 약속한 징표라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조선의 국왕이 사대부나 외국 사신들에게 유형무형의 선물을 증여하면서, 사대부와의 공치를 이루어내고 대외적으로 국가권력의 상징성을 견지해 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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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근대 이전에는 국왕이 국가권력의 상징이자 권력의 실현 통로였다. 현실 공간에서는 왕권이 신권(臣權)보다 미약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하의 권력은 국왕을 통해 구현되었으므로 국왕의 존재가 없었다면 사대부 정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조선 500년 동안 국왕과 신하의 관계는 실로 어수(魚水)의 관계여야만 했다. 국왕과 사대부는 조선의 정치구조에서 민중의 삶을 책임지고, 외환에 대처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스스로의 존립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그들은 서로 견제하기도 하고 때로는 보완하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고심했다.

국왕의 선물은 관직이나 마찬가지로 공기(公器)라고 일컬었다. 그것을 어떤 장(場)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국왕의 권력 행사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국왕 이외에 대비, 왕비, 세자도 신민들에게 갖가지 선물을 내렸지만 국왕의 선물이야말로 군신 간의 의리를 강화시켜 주는 보조 장치로서 큰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국왕이 신민들이나 외교 사절에게 내린 선물은 실로 다양했다. 동옷과 초구 같은 의복에서부터 활, 화살, 말, 서적과 문방사보, 약재와 음식물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많았고 그 이유도 갖가지였다. 어떤 물건은 아예 한 해의 증여량을 계산하여 상의원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다. 또한 상규를 벗어난 사면과 같은 것도 선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국왕이 선물을 내리는 것을 한자로 내사나 하사 혹은 은급이라 했다. 이때에는 대개 선물의 발급주체와 발급관청이 명시된 은사문도 함께 내렸다. 국왕이 선물을 내리면 신하나 백성은 국왕에 대한 충성의 뜻을 표하고, 때에 따라서는 사은의 의식과 함께 사전(謝箋)을 받들어 올렸다. 태조는 동북면에 산재한 조상들의 무덤들을 보살피고 동시에 그 지역의 행정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렸다. 세종은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강역을 확정하기 위해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를 보내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주었다. 문종은 부왕의 뜻을 이어 함길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상중에 있던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주었다. 또한 태종은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을 내려 흥을 돋우어, 이후 국왕이 문한(文翰)의 관서에서 행하는 공연(公?)에 찬조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최익현에게 돈 3만냥을 선물하고, 양무위원 이기에 대한 징계를 사면하는 한편, 일제의 압력으로 퇴위하여 상왕이 되었을 때는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는 등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조선의 국왕은 외교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로 노력하였다. 세종은 명나라에 대해 국격에 맞는 사절을 보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황화집’을 간행하여 명나라 사신에게 증정했다. 성종은 유구 사신을 칭하는 하카다 출신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려서 일본, 대마도, 유구와의 외교적 관계를 신중하게 이어나갔다.

그러나 국왕의 권력이 미약하거나 국왕이 혼암하여 선물을 잘못 내린 일도 있었다. 단종은 계해정난 이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신들에게 선물을 증여했고, 광해군은 부질없이 종계변무의 일을 재차 거론한 허균에게 녹비를 내렸다. 국권을 빼앗긴 순종은 의병들을 토적으로 규정하고 일본 거주민들을 위문하는 한편,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였다.

근대 이전의 왕정을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국왕들은 대개 선물도 공기(公器)로서 중시하고 인문주의의 토대 위에서 품격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 사실은 오늘날 행정책임자들에게 하나의 ‘거울’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 한다.

2012-06-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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