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위기와 ‘판단유예의 혜택’/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열린세상] 위기와 ‘판단유예의 혜택’/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입력 2013-03-18 00:00
업데이트 201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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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위기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어느 조직이든 위기를 사전에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조직이 크면 클수록 발생하는 위기도 다양하고 그로 인한 피해도 커지기 마련이다. 위기 발생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면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차선책이다.

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위기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기본과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중 하나가 위기관리에서 중요한 ‘판단 유예의 혜택’을 놓치는 것이다. 판단 유예의 혜택이란 조직이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공중이나 조직 안팎의 이해관계자들이 위기에 처한 조직을 비판하는 주장에 맹목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조직의 해명을 기다려 주고, 양측의 주장을 듣고 난 다음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다.

지난주 여수산단 폭발 사고로 대림산업이 언론의 질타를 받았고, 지난 1월 말 발생했던 삼성전자 화성반도체 공장의 불산 누출사고 때 삼성이 언론과 이해관계자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사장에서 부회장까지 나서 세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할 정도로 위기 수습에 부심했다. 삼성으로서는 유사한 사고가 났던 다른 기업에 비해 삼성이 과도하게 비판을 받고 있다며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은 비난에 대해 억울해할지 모르나 당시 미디어와 국민 여론은 삼성의 목소리에 그리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이제는 지난 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정국을 흔들어 놓았던 대표적인 위기 사건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문’이었다. 새 정부 출범 초기라 국정 장악력이 가장 높았을 때임에도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장악력은 급속히 기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부각된 표면적 쟁점은 미국산 소고기와 광우병 논란이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당시의 위기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MBC ‘PD수첩’ 프로그램이 불을 지르고 인터넷이 확산시켰다고 이야기하지만, 수많은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에 가세한 것을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위기에 처한 조직이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으로 국내외 많은 위기관리 전문가가 제시하는 3원칙이 있다. 신속성, 일관성, 개방성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신속히 위기 상황을 장악해 조직이 위기관리를 리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신속성 원칙이다. 일관성은 잡음 없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방성은 위기 정보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중에게 제공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하고 기본적인 위기관리 원칙이 ‘판단 유예의 혜택’을 조직이 누릴 수 있도록 평소 이해관계자를 비롯해 공중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평상시 조직이 어떻게 신뢰를 쌓아 왔는지에 따라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초동 단계에 조직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조직이 평소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덕을 쌓고 조직이 하는 일을 이해관계자와 국민들에게 소상히 전달하며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해 둔다면 그것이 누적돼 명성이 만들어지고, 공고한 명성은 위기 시 조직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는 것이다.

많은 기업과 정부 조직은 위기 때마다 당장의 위기 극복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수많은 위기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평소 공중의 신뢰를 쌓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공중은 세계적인 대기업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정부 조직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공중의 목소리에 더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조직이 하는 일을 평소에 정성을 다해 알리고 공감대를 넓혀 가는 것 이상 중요한 게 없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기대도 많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좋은 정책을 만들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겸허한 자세로 국민과 부단히 소통하며 평소 신뢰를 얻는 일이야말로 미래의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성공하는 정부를 만드는 첩경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2013-03-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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