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압도적 재선 성공한 페르난데스

‘열정’으로 압도적 재선 성공한 페르난데스

입력 2011-10-24 00:00
수정 2011-10-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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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앞세워 강·온 정치력으로 독자 영역 구축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바꾸려면 열정을 다하는 4천만 국민이 필요합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58)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의 주제로 삼은 문구다. 이 한마디는 유세 기간 내내 유권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페르난데스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하는 원동력이 됐다.

페르난데스는 1953년 2월 19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주(州) 라 플라타 시(市)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라 플라타 국립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페론대학청년단(JUP)에 가입해 활동하던 중 1974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 집권)을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군사독재정권 기간(1976~1983년) 남편의 고향인 산타크루스 주 리오 가예고스 시에서 함께 변호사로 활동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군정 종식과 함께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페르난데스는 1989년부터 산타크루스 주에서 주 의원, 연방 상원의원, 연방 하원의원에 잇따라 당선됐다. 남편 키르치네르는 리오 가예고스 시장과 산타크루스 주지사를 역임하는 등 부부가 동시에 유명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2003년 남편의 대선 캠프에 참여해 당선을 도왔고, 이후 대통령을 남편으로 둔 연방상원의원으로 맹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로 지역구를 바꿔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고, 2007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세계 최초로 부부가 연이어 직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되는 기록을 남겼다.

아르헨티나 헌정사상 첫 선출직 여성 대통령인 페르난데스는 정치권의 실력자였던 남편의 후광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20여년 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자신만의 정치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페르난데스가 승리함에 따라 남편의 임기까지 합친 ‘키르치네르 패밀리’의 집권 기간은 12년이 된다. 이들 부부가 우상으로 삼는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1946~1955년, 1973~1974년 집권)을 넘어서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말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여성 지도자에 여전히 낯선 아르헨티나 국민은 페르난데스가 정부와 집권당 내 유력 인사들의 등쌀에 밀려 곧 정치력에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를 분명하게 제시해 친위세력의 결속력을 높이면서 국정을 이끌어가는 수완을 발휘했다.

반대파에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남편이 추구한 경제모델을 끈기있게 실행해 도시 중산층의 마음을 얻었다.

결과는 지난 8월 14일 대선 예비선거에서 50.24%의 득표율로 나타났다. 2위에 오른 야권후보와 38%포인트의 격차를 나타내면서 재선 고지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집권 후 정치적 시련을 톡톡히 겪었다. 페르난데스는 지난 200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45.29%의 득표율로 당선됐고, 집권 초기 지지율은 52%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키르치네르 정부 때부터 잠재해온 농축산 부문과의 갈등이 2008년 들어 폭발하면서 페르난데스의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고, 집권당은 2009년 총선에서 참패했다.

페르난데스는 이후 지지율 회복을 위해 노련한 정치 행보를 보였다. 야권과 농축산 부문 등 갈등 당사자들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때때로 여성 특유의 감성 정치를 펼쳤다.

남편 사망 직후 한 연설에서는 “나는 혼자 정치를 할 수 없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국민에게 호소했다.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도 페르난데스의 재선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아르헨티나의 성장률이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8%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대 이상의 실적은 보조금 확대로 대표되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대한 우려도 가라앉혔다.

대통령 부부의 편법 재산증식 의혹이나 고(高) 인플레, 치안 불안도 공고하게 구축된 페르난데스의 이미지를 흔들지 못했다.

페르난데스는 비리 의혹으로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는 인물이나 정적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비리 의혹이 제기된 노동계의 지도자 우고 모야노와 대표적인 인권단체 ‘5월 광장 어머니들’의 에베 데 보나피니 회장을 가차없이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또 정부와 농축산 부문 간의 갈등 과정에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훌리오 코보스 부통령 겸 상원의장을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파타고니아 초원을 호령하는 표범에 빗대 ‘파타고니아의 표범’이라는 별명을 가진 페르난데스지만 여성이자 어머니로서의 면모도 엿보인다. 자신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라 플라타 시에서 태어났지만, 남편이 마지막 시간을 보낸 도시 리오 가예고스와 엘 칼라파테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으로 꼽는다.

페르난데스는 아직도 리오 가예고스에 집을 소유하고 있다. 이 집은 아들 막시모(34)와 딸 플로렌시아(21)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리오 가예고스에서는 현재 키르치네르 기념관이 건설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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