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 사랑 각별했던 故 박병선박사

우리 문화유산 사랑 각별했던 故 박병선박사

입력 2011-11-23 00:00
수정 2011-11-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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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반환운동 불지핀 인물…직지 첫 발견해 ‘직지대모’ 별명도

프랑스 파리에서 22일 밤(한국시간 23일 오전) 타계한 고(故) 박병선 박사(83·여)는 우리 문화유산을 끔찍이 사랑한 역사학자로 통한다.



1972년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서 사서로 근무할 당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처음으로 발견한 데 이어, 1979년에는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도 발견해 반환 운동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박 박사는 직지심체요절이 1455년판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빠른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직지 대모(代母)’라는 별명도 얻었다.

박 박사는 그동안 각 매체와 인터뷰할 때마다 1980년 BNF를 그만두고 나서 10여 년 간 매일 BNF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열람, 목차와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서 반드시 국내로 반환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말해왔다.

수녀를 꿈꿨던 박 박사는 진명여고와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박 박사는 우리나라 민간인 여성 가운데 처음으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은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후 박 박사는 프랑스 소르본학과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박사 과정까지 밟은 뒤 1967년 BNF에 들어가 13년간 근무하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실증 연구를 본격 시작했다.

박 박사는 지난 4-5월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 사정에 의해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돌아온 것에 대해서도 “잘못된 일”이라며 “하루빨리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정도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박 박사는 작년 1월 한국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고도 10개월 만에 프랑스로 되돌아와 최근까지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간 계기가 된 병인양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저술을 준비해왔다.

박 박사는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의 속편을 준비하다 병세가 악화되자 조카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내가 직접 출간하려고 했는데 아쉽다”면서 “병인양요 속편을 꼭 마무리지어 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유족들에 따르면, 결혼을 하지 않아 직계 가족이 없는 박 박사는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된다며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프랑스 북부 해안 노르망디 바다에 뿌려달라고 당부했다.

박 박사는 지난 9월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나, 그동안 병세가 호전되지 못해 전달받지 못했다.

박 박사는 병세가 갑자기 나빠져 파리 15구 잔 가르니에 병원에 입원한 직후인 지난달 25일 주불대사관 측이 전달한 훈장을 전수받은 뒤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도 눈물을 보였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유족들은 박 박사가 천주교 신자인 점을 감안, 천주교 식으로 장례를 치를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박 박사가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이후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그동안의 국가적 공로를 인정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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