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두 번째로 감염자 많은데 치명률 0.9% 현저히 낮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크렘린궁 대변인을 맡고 있는 드미트리 페스코프(52)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이 12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직접 밝혔는데 아내이며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겸 방송인 타탸나 나브카 역시 감염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상태가 괜찮지만 가족들에게 옮기지 않도록 입원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사진은 2015년 11월 28일 모스크바 붉은광장 링크 개장식 도중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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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 수도 14명으로, 세계 평균인 37명의 절반이 안 된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로 계산되는 치명률로 보면 러시아는 0.9%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치명률이 높은 프랑스(15%), 이탈리아(13.9%), 스페인(9.9%) 등은 물론 유럽에서 코로나19 대응 모범 국가로 평가받는 독일(4.4%)이나 세계적 모범 국가인 한국(2.4%)에 견줘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다.
일부에선 이처럼 낮은 러시아의 치명률에 대해 집계 방식의 차이를 지적하기도 한다. 어떤 나라는 코로나19 의심 증상만 보이다 사망해도 감염증 사망자로 집계하고 또다른 나라는 양성 판정을 받은 후 사망한 모든 사람을 코로나19 사망자로 집계하지만 러시아는 코로나19가 직접적 사망 원인이라는 최종 판정이 난 경우에만 감염증 사망자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사망했더라도 직접 사인이 다른 지병일 경우 감염증 사망자로 집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은 자체 진단키트로 하루 20만건에 이르는 광범위한 검진 검사를 실시하고 조기에 감염자를 발견해 병이 심각한 상태로 진전되기 전에 서둘러 치료함으로써 치명률을 낮출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주재 세계보건기구(WHO) 대표 멜리타 부이노비치는 이날 러시아가 고의적으로 치명률을 축소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부이노비치는 다만 “러시아 코로나19 치명률 자료를 재검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 집계 과정에서의 실수에 의한 통계 오류 가능성은 열어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방 언론매체들은 정부가 고의적으로 통계를 조작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당국은 그런 일 없다고 반박하는 일이 거듭되고 있다. 타티야나 골리코바 러시아 부총리는 12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코로나19 치명률을 의도적으로 낮췄을 수 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FT)의 보도를 반박했다. 골리코바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 정부는 코로나19 희생자 수치를 포함한 공식 통계를 조작한 적이 없다”면서 “(실제로) 러시아의 코로나19 평균 치명률은 (세계 평균치보다) 7.6배나 낮으며, 모스크바의 치명률만 보면 6.8배 낮다”고 소개했다.
FT는 앞서 러시아의 실제 코로나19 치명률이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통계보다 70% 이상 높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지난 8일 모스크바시 정부가 공개한 4월 코로나19 사망자 통계 자료를 인용해 당국이 감염증 사망자를 과소 집계하고 있을 수 있다고 전날 지적했다. 신문은 모스크바시가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관내 사망자는 지난 5년간 4월 사망자 평균치보다 약 1700명이 많았는데 실제로 발표한 통계는 658명에 그쳤다는 것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