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시위대, 노예무역상 콜스턴 동상 철거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인종차별 역사 속 인물들이 시위대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진은 영국 남서부 브리스톨에서 성난 시위대가 7일(현지시간) 17세기 흑인노예무역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려 인근 강물에 던지고 있다.
브리스톨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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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없어졌어야” “무질서 대변” 논쟁
벨기에 레오폴드 2세 흉상엔 붉은 페인트
철거 청원 3만명… 콩고 지배 논란 재점화
美 곳곳 남부군 사령관 동상 등 없애기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인종차별 역사 속 인물들이 시위대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진은 벨기에 에케렌에 있는 콩고 식민 통치의 상징인 국왕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이 빨간 페인트로 훼손돼 있다. 에케렌 EPA 연합뉴스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인종차별 역사 속 인물들이 시위대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진은 미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동상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의 낙서로 더렵혀져 있다. 리치몬드 AP 연합뉴스
동상 철거를 둘러싸고 영국 내에서는 과거사 논란도 촉발되는 모습이다.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올루소가는 BBC에 콜스턴 동상 철거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동상 철거에 비유하며 “오래전에 없어져야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은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질서를 대변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최근 시위가 “폭력에 전복됐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벨기에에서는 1800년대 후반 아프리카 콩고를 침략해 원주민 학살 등의 범죄를 저지른 레오폴드 2세 국왕의 동상이 최근 훼손됐다. 지난 2일 겐트의 레오폴드 2세 흉상에는 붉은 페인트가 칠해졌고, 얼굴에는 플로이드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던 “숨 쉴 수 없다”고 쓴 천이 덮여 있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상대로 저지른 악행 가운데 가장 악독했던 것으로 꼽히는 레오폴드 2세의 과오에 대해 벨기에 정부는 그동안 과거는 과거일 뿐 배상 등의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번진 인종차별 반대 여론에 참회와 사과를 주장하는 측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며 벨기에의 콩고 지배에 대한 비판이 수면으로 올라오고, 레오폴드 2세 관련 역사교과서 내용 수정 등 변화가 감지됐다. 수도 브뤼셀에 있는 레오폴드 2세 동상도 철거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에도 3만명 이상이 서명한 상태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 격화 이후 미국에서는 관련 상징물 철거가 이어지고 있다. 버지니아주는 주도 리치먼드 시내에 우뚝 선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의 동상을 없애기로 했다. 대학 학장을 지내기도 한 로버트 리는 위대한 명장이자 교육자로 평가되지만, 남북전쟁 때 노예제 찬성 편에 선 그의 생애는 늘 논란거리였다. 최근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그의 동상 앞에서 집중적으로 열리며 또다시 철거 여론의 표적이 됐다. 이에 민주당 소속 랠프 노섬 버지니아주지사는 직접 동상 철거 계획을 밝히며 성난 민심을 다독이기에 나섰다. 로버트 리의 후예인 작가 로버트 리 4세는 워싱턴포스트에 쓴 기고에서 “조상을 비판하고, 그의 동상 철거를 지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자문하며 밤잠을 설치곤 했다”면서 “이제 과거를 속죄하고 새로운 아침을 열어야 할 때”라고 썼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2020-06-09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