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부족한데 희생양을” 태국 판사가 법정에서 총 쏴 극단 선택

“증거 부족한데 희생양을” 태국 판사가 법정에서 총 쏴 극단 선택

임병선 기자
입력 2019-10-06 10:05
업데이트 2019-10-0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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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한 판사가 법정에서 사법 제도를 비판하는 일종의 성명을 낭독한 뒤 곧바로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카나콘 피안차나 판사가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얄라 법원에서 살인과 무기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된 5명의 무슬림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언한 뒤 미리 준비한 듯한 성명을 꺼내 읽은 뒤 법관 선서를 하고 곧바로 자신의 가슴을 겨눠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고 영국 BBC가 5일 전했다. 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상태가 호전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수 쓴 것으로 보이는 25쪽의 성명에는 재판을 둘러싸고 누군가 압력을 행사한 것 같은 정황이 담겨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태국 남부 얄라 지역은 말레이시아 케다와 페락주와 접경을 이룬 곳이며 불교를 숭상하는 태국에서도 무슬림들이 많은 사는 지역이다. 치안이 좋지 않아 무장집단이 활개를 치는 곳이다. 2004년 이후 7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을 정도라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이 판사는 페이스북에 성명을 올렸는데 “누군가를 처벌하려면 분명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확실하지 않다면 그들을 벌할 수 없다”면서 “다섯 피고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선고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법 절차는 투명하고 믿을 만해야 한다. 무고한 이들을 처벌하는 일은 희생양만 만들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순간에도 이 나라 1심 법원의 동료 판사들은 나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법관 선서를 지키지 못한다면 명예롭지 못하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밝혔다. AP 통신은 판사 감독관들이 1심 판결 내용을 미리 검열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 피안차나 판사가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라고 전했다.

그 뒤 페이스북 글은 접속이 되지 않고 있지만 법정 안의 사람들은 피안차나 판사가 전직 국왕의 초상화 앞에서 법관 선서를 하더니 갑자기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피안차나 판사가 왜 극단을 선택했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법원행정처 대변인 수리얀 홍빌라이는 AFP 통신에 “개인적 스트레스” 탓에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그가 이날 판결을 비롯해 일련의 재판들에서 증거가 부족한 이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고 전했다.

인권단체들은 보안군이 말레이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에서 무슬림 용의자들의 혐의를 날조해내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피안차나 판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알려진 뒤 얄라 법원 앞에서 꽃들이 바쳐지고 있다. 그가 성명을 통해 남긴 구호 ‘판결은 판사에게 돌려주라, 정의는 국민에게 돌려주라’는 태국의 사법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인식하는 이들애게 상징적인 구호가 되고 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AFP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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