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어렵다는 ‘장원급제’ 무려 아홉번한 ‘천재 이황’

한번도 어렵다는 ‘장원급제’ 무려 아홉번한 ‘천재 이황’

입력 2010-04-22 00:00
업데이트 2010-04-2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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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거 시험은 문과와 무과를 통해 문반·무반을 고루 등용해 ’양반(兩班)‘ 관료 체제를 확립한 제도였다.

 관료 대부분이 과거를 통해 등용되다 보니 과거 시험장에는 진풍경이 연출됐다.응시자들은 문밖에서는 옷과 소지품을 검사받았고,응시장에 들어가서는 각자 여섯 자(약 180㎝) 간격으로 떨어져 앉았으며,용변을 보러 갈 때도 보고하고 개별적으로 가야 했다.

 과거의 공정성을 확보하려고 답안지 오른쪽에 인적 사항을 적은 부분을 접고 풀로 붙이는 봉미(封彌)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 방지를 위한 노력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시험지를 응시자들이 각자 준비해야 하는 점을 이용해 두껍고 질 좋은 종이를 써서 권세가나 부호의 자제임을 드러내려는 이도 많았다.

 정구선 전 동국대 연구교수의 ’조선의 출셋길,장원급제‘(팬덤북스 펴냄)는 과거제도에 대한 설명과 일화를 모은 책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율곡 이이는 가장 많이 장원급제한 사람이다.평생에 한 번 장원급제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는 진사시 초시와 복시,한성시,별시 초시와 복시,생원시 초시,식년 문과의 초시,복시,전시 등 무려 9번에 걸쳐 장원급제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누군가가 9번이나 장원급제할 정도로 벼슬에 집착한 이유를 묻자 그는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고,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 드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16~17세 때 아버지의 첩에게 시달림을 당하다가 집을 나가 산사를 전전하며 다녔는데,이 때문에 승려였다는 소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평생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한편,과거시험에서 임금을 비판했다가 급제가 취소된 이도 있었다.임숙영은 광해군 3년에 시행된 과거에서 임금과 외척 세력,권신 등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를 시험관이 장원으로 발탁하려 했다가 동료의 만류로 등수를 낮춰 급제시켰는데,광해군은 답안지를 보고 크게 화를 내면서 임숙영의 이름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한문과 시에 능한 임숙영은 나중에 인조반정이 일어나 복직하게 되지만,관직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그밖에 장원급제했다가 내시의 조카라는 이유로 탄핵당한 신계종,장원급제 후 사관을 지내다가 사초를 고치는 바람에 관노로 전락한 민수의 일화도 소개되며,역시 장원급제자였으나 단종 복위를 기도했다가 희생당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 하위지의 이야기도 담았다.

 268쪽.1만3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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