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게 서정을 돌려주다

詩에게 서정을 돌려주다

입력 2011-03-26 00:00
수정 2011-03-2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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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세 시인 ‘극 서정시집’ 출간

시구 한줄, 시어 하나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있다. 그날 하늘은 유독 푸르렀고, 바람은 달콤한 냄새를 한껏 풍겼으며, 길가 앉은뱅이 들꽃에 발길이 절로 멈춰졌다. 밤하늘 별자리 이름이 문득 궁금해졌으며, 낙엽의 바스락거림이 관현악 화음으로 들려왔다. 오롯이 시(詩)만이 해낼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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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시 역시 서정을 떠날 수 없다며 의기투합해 ‘극 서정시집’을 펴낸 최동호(왼쪽부터), 이하석, 조정권 시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서정시학 제공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시 역시 서정을 떠날 수 없다며 의기투합해 ‘극 서정시집’을 펴낸 최동호(왼쪽부터), 이하석, 조정권 시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서정시학 제공
이제 슬슬 원로 반열로 접어드는 60대 시인 세 사람이 다시 시의 서정으로 돌아가자며 뜻을 모았다. 어지러운 서사의 시, 형식을 깨뜨리는 실험시에 대한 낯섦을 극복하며 공감의 수단으로서 시의 역할을 회복하겠다는 선언이다. 조정권(62), 이하석(63), 최동호(63)는 쓰는 이와 읽는 이가 아무런 언어유희 없이, 소통의 제약 없이, 문학적 지식 없이 오로지 감성으로만 만날 수 있는 시를 쓰겠다며 ‘극 서정시집’이라고 이름 붙인 시집을 함께 펴냈다. 조정권의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이하석의 ‘상응’, 그리고 최동호의 ‘얼음 얼굴’이다.

문학 경향으로 보자면 반동(反動)에 가깝다. 감각의 언어와 파격의 형식을 앞세운 실험시가 주도하고 있는 시단에서 소박한 아름다움만으로 노래되는 시는 흘러간 그 옛날의 것에 가깝다. 하지만 이 역시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다. 복고적 반동에 머무느냐, 또 다른 실험이 되느냐는 결국 얇은 종이 한장 차이다.

극도로 짧은 단시들을 의도적으로 썼다. 조정권은 ‘흰 산 바위 틈에서 찾았다 쇠 깎아놓은 듯 철화鐵花’(‘빙설꽃’ 전문), 또는 ‘꽃들은, 꽃들은, 피는 걸 감추지 못하나봐/ 인간과 달라 감추는 짓을 하지 못하나봐’(‘꽃들은’ 전문)와 같이 감정을 극도로 자제하며 시어를 골라냈다.

최동호 역시 다람쥐 꼬리처럼 설핏 마룻장을 비추고 마는 겨울 햇빛을 보고 ‘툇마루 보푸라기/ 먼지/ 쓸고 가는 햇빛의 혀’라고 노래하며 여백과 여운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쓸쓸하기만 한, 그러나 소중한 따스함을 간직한 겨울 햇빛이 몸을 간지럽힌다.

최동호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명징한 서정시로 시의 정도를 가 보자는 뜻에서 극서정시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됐다.”면서 “극도로 축약해 행간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트위터 시대, 디지털 시대 코드와도 방향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시인의 시집을 낸 출판사 서정시학은 40편 안팎의 짧은 시를 실은 서정시집을 계속 펴낼 계획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1-03-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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