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며느리 명성황후한테 한글편지”

“흥선대원군, 며느리 명성황후한테 한글편지”

입력 2012-06-27 00:00
수정 2012-06-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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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분석

“그동안 망극한 일을 어찌 만 리 밖 책상 앞에서 쓰는 간단한 글월로 말하겠습니까. (중략) 다시 뵙지도 못하고 (내가 살아 있을) 세상이 오래지 아니하겠으니, 지필을 대하여 한심합니다. 내내 태평이 지내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구한말 비운의 정치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1882년에 쓴 한글 편지 중 일부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흥선대원군은 이 편지를 쓸 당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중국 톈진(天津)에서 유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힘들고 고독했을 유폐 생활, 흥선대원군은 누구에게 편지를 썼을까. 편지 수신자에 대한 힌트는 편지 봉투에 있다.

편지 봉투에는 ‘뎐 마누라 젼(前)’이라고 적혀 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봉투에 적힌 ‘마누라’를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해 이 편지를 흥선대원군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로 추측했다.

하지만 이종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이 편지가 흥선대원군이 부인이 아닌 며느리인 명성황후에게 보낸 편지라고 주장한다.

이 연구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가 최근 주최한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뎐 마누라 젼’의 ‘뎐’은 대궐 전(殿)자이며, ‘마누라’는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사용된 말이었다.

이 연구원은 “(순조 임금의 딸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의 글에도 ‘뎐 마누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중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면서 “그동안 ‘마누라’를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해 이 편지가 대원군이 자기 부인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편지의 사연으로 보아도 대원군의 부인이 될 수가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흥선대원군이 톈진에 잡혀가 있을 때 중전은 명성황후였다”면서 “편지 내용 중에는 그동안 잘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마누라’를 부인이 아닌 며느리인 명성황후로 보면 편지 내용이 맞아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편지 내용 중 ‘마마께서는 하늘이 도우셔서 환위(還位)를 하셨거니와 나야 어찌 생환하기를 바라오리까’에서 ‘환위’는 제자리로 돌아옴이라는 뜻으로,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지방으로 피신했다가 왕궁으로 돌아오신 일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게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흥선대원군은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명성황후에게 후사도 부탁했다.

”나는 다시 생환은 못 하고 만 리 밖 고혼이 되오니, 우리 집 후사야 양전(고종과 명성황후)께서 어련히 보아 주시겠습니까.”

이 연구원은 “안부를 물을 때 임금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이 일반적인데 흥선대원군은 이 편지에서 (아들인) 고종의 안부보다 실권자인 명성황후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면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명성황후의 안부부터 물었겠느냐”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27일 오후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장서각에서 열리는 ‘제2차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흥선대원군이 톈진 유폐 생활 중 아들 이재면에게 보낸 편지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이 연구원은 “흥선대원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니?탕’이라는 인명이 나오는데 당시 청나라 실권자인 이홍장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날 이래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나신걸(羅臣傑. 15세기 중반-16세기 전반)이라는 군관이 부인에게 보낸 한글편지 내용을 소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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