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전 초기청자 생산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사적 됐다

천년전 초기청자 생산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사적 됐다

강경민 기자
입력 2019-09-02 09:48
수정 2019-09-0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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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변화하는 양상 잘 남아”

고려시대 10∼11세기 초기청자 생산지인 전북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 됐다.

문화재청은 초기청자 생산 과정의 변천 양상을 보여주는 유적인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를 사적 제551호로 지정했다고 2일 밝혔다.

진안군 도통리 요지는 내동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산줄기 끝의 중평마을에 있다. 마을에는 청자와 청자를 만들 때 덮는 그릇인 갑발(匣鉢) 조각이 분포하고, 일부에는 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도구인 요도구(窯道具) 퇴적층이 남았다.

이곳에 요지(窯址·가마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표조사로 알려졌으며,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시굴조사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를 통해 초기청자를 생산한 벽돌가마와 진흙가마가 모두 확인됐다.

벽돌가마와 진흙가마 한 기는 총길이가 43m에 이른다. 호남 지역에서 가장 큰 초기청자 가마로, 처음에는 벽체를 벽돌로 세웠다가 나중에 내벽을 진흙과 갑발로 보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가마는 벽돌 없이 진흙과 갑발로 구축한 진흙가마로, 길이가 13.4m다.

가마 내부와 대규모 폐기장에서는 초기청자인 해무리굽완, 잔, 잔받침, 주전자, 꽃무늬 접시와 많은 벽돌, 갑발이 출토됐다.

또 ‘대’(大) 자를 새긴 청자와 고누놀이 흔적이 있는 갑발, 가마에서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인 배연공(排煙孔)으로 추정되는 벽체 조각도 발견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진안 도통리 요지는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전환하는 과정이 잘 남아 있다”며 “초기청자 연구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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