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47>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47>

입력 2013-06-04 00:00
업데이트 2013-06-0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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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주영 그림 최석운

현령을 하직한 반수 권재만은 삼문 밖 여염집에 숨어 하회를 기다리던 정한조와 곽개천을 데리고 말래 도방으로 발행하였다. 도방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당장 통문을 띄워 울진과 현동, 내성 부상들의 힘을 합쳐 흉도들을 적몰시키자는 성급한 주장도 있었고, 먼저 염탐꾼을 놓아 정확한 적소(賊巢)를 찾아낸 연후에 기습으로 등시 색출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통문을 돌린다면 십이령 숫막촌은 물론이고 도방 대처에 소문이 짜하게 퍼져 흉도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선제 공격을 당할 우려가 없지 않았다. 위급할 때일수록 돌아가자는 정한조의 설득이 주효하여 우선 간자를 놓아 소굴부터 찾아내자는 데 의견들이 모아졌다. 정한조는 원상들 중에서 다섯을 차출하여 내성 쪽으로 발행시켰다. 내성의 포주인 윤기호의 동정을 살피기로 한 것이었다. 궐자가 경영하는 소금 도가 주변을 살핀다면 필경 꼬리가 잡힐 일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십이령 고개치와 계곡에 있는 암자의 동태를 살피도록 하였다.



그때 천봉삼은 접소의 반수와 초인사를 올리고 휘하에 머물도록 간청하였다. 죽은 사람이라도 일어나면 행중에 가담시켜야 할 판국에 아직 거동이 임의롭지 못하다고는 하나 송파의 쇠살쭈 노릇하던 장정을 얻었다면 그만한 다행이 없었다. 행중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반수는 정한조에게 넌지시 물었다.

“소굴의 와주란 놈이 수하 도적들을 어떻게 잡도리했을까?”

“나름대로 계책이 있었을 것이고, 그 수하들도 분부에 따라 조련을 숙지하고 그대로 시행에 옮겼을 테지요.”

척후로 지목된 넷과 반수 도감이 지켜보는 가운데 곽개천은 포수 시절에 익혔던 비계(秘計)를 일러 주었다.

“적소를 찾아내거나 동정을 살피는 데 사흘이 걸릴지 혹여 달포가 걸릴지 알 수 없소. 그러나 그동안 절대로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오. 지금부터는 동배 간에 수작을 나누더라도 음성을 낮추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엄폐물이 없으면 앉지도 말고 서지도 마십시오. 젖었거나 말랐거나 짚신을 버리고 미투리로 바꿔 신고 벗는 일에 신중해야 합니다. 잠행할 때 기침이 나오면 근처에 인적이 있거나 없거나 입을 땅에 대고 숨을 죽여야 하오. 바람을 등지고 걸을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수시로 변복하고 똥오줌을 함부로 누지 말고, 쓰러진 나무는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지나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오. 관목 숲을 지날 때는 나무가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고, 서로 마주칠 때는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이라 할지라도 수하를 엄히 해야 하오. 떠날 때부터 언적(言的)을 정해 두어야 하오. 파수를 엄중하게 하고, 산속에서 끼니때를 맞이하여 도리 없이 밥을 지어야 할 때는 연기가 나지 않는 싸리나무를 꺾어 밥을 지어야 합니다. 술을 마셔도 안 되오. 한 잔 먹으면 우선은 오금이 가뿐해지겠지만, 마시는 일이 습관이 되면, 중언부언하다가 자기가 무슨 일로 잠행하는지 은연중 주모에게 실토정하게 되오. 아예 굽고 지지는 장소에 얼씬도 않는 것이 상책이지요. 등걸잠을 잘 때도 있을 것이고, 쪽잠으로 때울 때도 있을 것이고, 헛코를 골며 자는 척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일각이라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미행길로 나섰는지 잊지 않고 곁에 있는 길손의 말을 꼼꼼하게 엿들어야 하오. 그런 자들이 동무들의 다음 행선지를 은연중 가르쳐 줄 때가 있소. 술은 오늘 밤만 마시는 게 좋겠소.”

정한조는 책상다리하고 앉았다가 곽개천의 말이 한마디도 버릴 말이 없다고 맞장구를 쳤다.

“내가 거들어 줄 말이 없을 만큼 잘하시었네. 그런데 임자들에겐 가진 병장기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병장기를 몸에 지니게 되면 무뢰배나 적당으로 여겨 거리 귀신 되기 십상일 것이야. 그리고 만기는 도방에 남아서 천봉삼이란 사람 한시도 방심하지 말고 구완하는 데 정성을 다해야 하네. 다시 한번 그 사람을 놓치면 그땐 징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 못 하네. 하찮은 거동도 눈여겨보아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도감 어른.”

내성의 포주인 윤기호의 동태를 염탐할 사람은 길세만으로 지목되었고, 십이령 산기슭에 자리 잡은 절간들의 출입을 염탐하는 일은 곽개천을 비롯하여 박원산과 권영동의 차지가 되었다. 길세만이 여색을 밝히는 병통이 있었으나 약고 꾀바른 구석이 없지 않아서 염탐꾼으로는 적격이었다.

2013-06-0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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