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58>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58>

입력 2013-06-19 00:00
업데이트 2013-06-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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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주영 그림 최석운

발아래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소(沼)가 기다리고 있어서 실족하면 그대로 강물 속으로 떨어져 소금은 잃어버리고 물먹은 섬거적만 남기 일쑤였다. 지난 몇 해 동안 그 벼룻길에서 굴러떨어져 열명길에 오른 차인꾼도 두 명이나 되었다. 지난겨울에는 강이 얼어 있었으므로 등빙해서 곧장 곧은재로 들어섰지만, 지금은 해토가 되어 나룻배로 건너야 했다. 분천을 건너면 바로 멧재를 넘어 내성 경내로 들어서는데, 그곳에서 곧장 검은돌 마을 주막거리와 만나게 된다. 운수가 좋다면, 검은돌 주막거리에서는 오동나무골 약수터 자리를 거쳐 기다리고 있는 강원도 태백이나 영월 행상들과 만나 소금짐을 줄일 수도 있다.


검은돌 마을에는 세 갈래 길이 있었다. 하나는 보부상들이 발견한 오동나무골 약수터를 거쳐 태백으로 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십리 상거에 있는 내성장 가는 길, 그다음이 곧은재를 넘어 울진의 염전이나 부흥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깊은 계곡에도 잎이 나기 시작하는 4월 하순이라지만, 그동안 비가 푸짐하게 내린 적이 없어 강물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그러나 나귀를 몰고 대중없이 물길을 건너다가 꾀 많은 나귀들이 물에 풀썩 주저앉기라도 한다면 소금장수 볼장 다 본다는 낭패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분천에 당도하면 일행은 등짐을 내려 나귀와 같이 거룻배를 탄다. 사공막에는 세 사람의 사공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오십이 넘은 노인네였고, 나머지 두 사람 삼십대와 이십대의 장정이었다. 소금 상단과는 안면을 트고 지낸 지가 오래여서 지금은 서로 형님 아우로 허교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들 사공에게서 앞서 강을 건너간 길세만의 소식을 들었다. 염탐꾼으로 발행시킨 날짜를 따져보니 이틀 정도 늦게 강을 건넌 것이었다. 그러나 정한조는 소임을 소홀히 한 길세만의 일탈을 사공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반수 권재만이 들려준 이야기를 항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말 중에는 장사 때문에 큰돈을 지니고 있을 때는 먼저 안전부터 생각하라. 될 수 있는 한 등짐의 부피를 줄이고 걸음을 재촉하여 신지*에 빨리 도착하라. 장삿길을 나설 적에는 집안의 신실한 아내라 할지라도 행선지를 알려선 안 된다. 집에서 한 걸음만 나오면 귀신같이 신속히 이동하고, 거룻배를 탈 적에는 자신이 장사꾼이란 것을 사공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육로로 갈 경우에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지 말고 무거워 보이는 자루나 상자를 지니지 말라. 배를 타거나 말을 타고 갈 때, 뱃사공이나 마부에게 짐을 맡기지 말라. 아침에 일찍 발행하고, 아직 해가 훤할 때 숙박할 사처를 정하고, 어두워지면 마차나 배 타는 것을 경계하라. 만에 하나 길거리에서 호객하며 아양 떠는 계집 사람이 있더라도 거들떠보지 말 것이며, 우연히 길바닥에서 만난 동업자를 경계하라. 결코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동업자의 안색과 언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야 크고 작은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숙소에서 잠을 청할 때 속옷 벗는 것을 경계하라.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을 때, 밥을 먹을 때도 사주경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때 정한조가 물었다.

“어째서 집을 나설 적에 내자에게 행선지를 발설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두 가지 때문이겠지. 한 가지는 남편의 행선지를 알면 음탕한 내자가 내왕 행보의 짧고 긴 것을 가늠하여 외간 남자와 부정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아녀자들이란 입이 가벼워 외간의 행선지를 함부로 말하고 쏘다니면 필경 장삿길에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

*신지:목적지

2013-06-1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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