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비워내라, 그럼 더 맛있어질지니

다 비워내라, 그럼 더 맛있어질지니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0-06-07 23:08
수정 2020-06-0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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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리뷰] ‘궁극의 맛’

세상과 단절된 여자교도소에서의 삶
재소자와 7가지 음식에 얽힌 사연들
욕망 덜어내지 못하면 끝내 ‘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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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추억이 담긴 해물라면을 먹고 있는 젊은 여성 재소자의 모습. 무대 한켠에서 실제로 라면을 끓여 관객들의 후각을 건드려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딸과의 추억이 담긴 해물라면을 먹고 있는 젊은 여성 재소자의 모습. 무대 한켠에서 실제로 라면을 끓여 관객들의 후각을 건드려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맛있는 음식을 언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극을 쓴 작가는 “완전히 소화가 다 됐을 때”라고 했다. 충분히 비워낸 속이어야 그 맛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덜어내지도 않고 계속 채우는 음식은 결국 체하기 마련이다. 연극 ‘궁극의 맛’은 잘 먹으려면 잘 비워내기도 해야 한다는 당연할 수 있는 이치를 당연하지 않게 말해 준다.

극은 여자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처음 공연장을 들어섰을 때 ‘잘못 찾아왔나’ 두리번거릴 만큼 무대가 독특하다. 뾰족한 직사각형 구도로 마치 바(bar)에 온 듯, 긴 검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작은 세모 무대를 둘러싸고 있다. 살인, 폭행, 도박 등으로 극 중에선 세상과 단절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테이블에 음식을 올려놓고 객석을 자유롭게 누빈다.

일곱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 무대에는 소고기 뭇국과 라면, 선지해장국, 파스타, 왕족발, 펑펑이떡이 순서대로 나온다. 평범해 보이는 음식들인데 극 안의 재소자들에겐 너무나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어머니의 구수한 소고기 뭇국, 성범죄 피해자였던 초등학생 딸을 추억하게 한 해물라면, 국회의원 대신 구속된 보좌관의 핏빛 선지해장국, 대를 이어 내려오는 ‘손맛’의 왕족발, ‘회장님’께 맛보게 했다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탈북 입주도우미의 강냉이가루 날리는 펑펑이떡…. 너무 맛있는 음식들 속에 처연한 사연들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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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의 음식 속에 담긴 애환을 그린 작품 ‘궁극의 맛’의 한 장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가 파스타를 먹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의 음식 속에 담긴 애환을 그린 작품 ‘궁극의 맛’의 한 장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가 파스타를 먹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배우 이주영의 무거운 모노드라마가 시작되면 다소 불편하던 이야기들이 서서히 관객과 가까워지면서 코끝이 찡해진다. 중반에 재소자들이 함께 조리도구를 시끄럽게 두들기며 랩과 찬송가를 뒤섞어 ‘영롱한’ 파스타 면발의 강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장면에서 웃음도 터진다. 최근 드라마에서 짧은 등장으로도 눈에 띄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강애심, 이수미, 이봉련의 연기가 에피소드마다 적재적소에 쓰여 분노와 슬픔, 웃음을 조리한다.

그러다 마지막 이야기 ‘체’는 음식이 아닌 구토를 주제로 한다.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않은 탓에 먹은 것을 다 비워내는 소리가 관객들의 비위마저 건드린다.

도박, 마약, 알코올중독자가 토사물에 미끄러져 뒤엉키는 장면은 제대로 덜어내지 못하고 쌓기만 한 욕망이 결국 중독이 되고, 중독은 끝내 탈이 나고야 만다는 삶의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연극 ‘궁극의 맛’은 음식을 주제로 한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FOOD)’ 시리즈의 두 번째 연극으로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오는 20일까지 맛볼 수 있다.

쓰치야마 시게루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지만, 공통점은 교도소와 재소자, 음식을 주제로 한다는 것뿐 우리의 정서에 맞게 재창작됐다. 극의 신유청 연출가는 ‘그을린 사랑’으로 지난 5일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을 수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20-06-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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