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술… 음식에 얽힌 사연들 담아”
‘내가 술이 무슨 맛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된 건 할머니가 집에서 빚은 막걸리 덕분이었다. 할머니는 모내기, 김매기, 추수할 때 같은 농번기에 일꾼들에게 주기 위해 막걸리를 빚었다. (중략)대학시절부터 술을 무섭게 마시다 오늘날 주선(酒仙)이 된 위대한 영혼들 사이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도 어제처럼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된 데는 막걸리의 은혜가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280, 284쪽)성석제
이 책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상주에서부터 저 멀리 칠레에 이르기까지 저자 자신이 천하를 유람하며 맛본 궁극의 음식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낸 숙수(熟手)들,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은 정겨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구수한 음식의 세계를 안내하는 에세이다.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연재한 글에 국수, 두부과자 등에 대한 대목을 더 추가했다.
“책 1부에서는 밥상에 대한 글을 실었습니다. 부뚜막, 무쇠솥, 김치볶음밥 같은 가정식 음식은 물론 연탄불에 올려놓으면 뽀얀 물이 나오는 벚굴, 독일의 ‘할매 포차’에서 맛본 소시지, 중국에서 먹은 동파육까지 다양한 음식을 소개했지요.”
지난 5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난 성 작가는 대학시절 백일장에서 가작에 그치자 항의하러 심사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홍어찜을 얻어먹고 만취한 에피소드 등도 있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2부에는 술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읽어 볼 것을 추천(?)했다. 책을 잠시 뒤져 봤다.
‘술은 가성(假性) 죽음이다. 술은 꿈의 유사품이다. 고금의 재사(才士) 대부분이 술과 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대여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것을, 그 거센 물결은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네’(272쪽)
그에게 제목이 왜 ‘칼과 황홀’인지를 물었다. “칼은 요리를 해 주는 사람이고 황홀은 바로 그 요리를 느끼는 감각이다. 칼과 황홀 사이에는 음식과 인간, 삶이 있다.”며 웃는다.
처음에는 제목이 무겁다고 생각했으나 출판사에서 고집을 부려 그렇게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음식에 관심이 많다. 이 책의 원고 또한 오랫동안 준비했다.
어릴 때 할머니의 막걸리 맛을 보던 추억은 물론 성인식 때의 막걸리 경험담 등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람과 사연을 담고 있다. 그는 “기이하고 특별한 솜씨가 아닌 전통적인 발효 음식을 다뤘다.”고 부연한다.
책 곳곳에 만화가 정훈이의 재치 넘치는 그림이 담겨 있어 더욱 흥미를 살린다. 책 뒷부분에는 맛지도와 함께 책에서 언급한 식당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는 “내년 초 가족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1만3800원.
글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2011-10-08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