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문인 이광수·주요한 원조 ‘멀티테이너’였다

정통문인 이광수·주요한 원조 ‘멀티테이너’였다

입력 2013-10-26 00:00
업데이트 2013-10-26 00:0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1930년대 한국 대표 문인들 동인지 폐간 후 창작공간 좁아져 식민지시대 유행가 18%나 불러

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구인모 지음/현실문화/584쪽/2만 8000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 문인들은 1929년부터 1937년까지 근 10년간 유행가 가사를 쓰고 음반으로 취입했다. 일제 강점기 문인들의 외도와 이탈을 문학사 및 문화사적으로 분석한 책 ‘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는 선언으로 출발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동환, 이은상, 홍사용 등이 노랫말을 쓰고 고한승, 김종한, 김형원, 노자영, 유도순, 이하윤, 조영출 등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시인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음반에 취입한 작품은 확인된 것만 698곡으로, 식민지 시대 전체 유행가요의 18%에 이른다.

이들이 유행가 가사를 쓰며 대중과의 교감에 나선 것은 ‘개벽’ 등 동인지의 폐간에 따른 창작 공간의 위축, 높은 문맹률에다 빈약한 독자층 등 시단의 폐색현상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잡가나 유행창가와 같은 이종 양식들과의 경쟁, 시의 대중화에 대한 열망, 시인으로서의 삶을 보장받으려는 현실적 욕구, 다국적 음반산업과 유성기의 도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들의 모험은 자유시에서 출발한 근대시를 정형시로 퇴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미지 확대
유행시는 1929년 이광수 외에 김소월, 변영로, 양주동 등 11명의 문학인과 안기영, 윤극영 등의 음악인 5명이 조선가요협회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효시는 이은상의 ‘마의태자’다. 이광수의 ‘우리 아기 날’, 김동환의 ‘종로네거리’, 홍사용의 ‘댓스 오-케-’가 음반으로 나왔다. 대표작은 김형원이 노랫말을 쓰고 안기영이 곡을 붙인 ‘그리운 강남’으로 해방 후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인기가 오래갔다. 조선가요협회 참여 문인들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해 1933년을 기점으로 활동이 뜸해졌지만 김억, 유도순 ,이하윤 등은 그 후에도 활발하게 작품을 냈다. 김억은 1933년 ‘수부의 노래’를 시작으로 1940년대까지 61편을 음반으로 냈다. 이하윤은 ‘섬색시’, ‘처녀열여덟엔’ 등 158편의 유행가 가사를 발표했다. 유도순은 카페 여급 김봉자와 경성제대 의학사 노병윤의 스캔들을 다룬 ‘봉자의 노래’를 히트시키는 등 1934~35년 2년간 92편을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유행가요의 운명은 1932년 매일신보 기자가 이광수의 ‘쓰러진 젊은 꿈’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엽기적’이라고 한 데서 보듯 어느 정도 예견된다. 흘러왔다 흘러가는 유행가의 속성처럼 정통 문인들의 유행시는 곧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김억과 이하윤은 1937년 이후 전시상황에 부응하는 시국가요를 짓는 등 전쟁협력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기도 했다. 지은이는 그러나 “‘동심초’(김억 작사, 김성태 작곡), ‘동무생각’(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등이 가곡으로 남아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2013-10-26 20면
많이 본 뉴스
성심당 임대료 갈등, 당신의 생각은?
전국 3대 빵집 중 하나이자 대전 명물로 꼽히는 ‘성심당’의 임대료 논란이 뜨겁습니다. 성심당은 월 매출의 4%인 1억원의 월 임대료를 내왔는데, 코레일유통은 규정에 따라 월 매출의 17%인 4억 4000만원을 임대료로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성심당 측은 임대료 인상이 너무 과도하다고 맞섰고, 코레일유통은 전국 기차역 내 상업시설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으로 성심당에만 특혜를 줄 순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대료 갈등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규정에 따라 임대료를 인상해야 한다
현재의 임대료 1억원을 유지해야 한다
협의로 적정 임대료를 도출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