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에 머물러》|노란 병 이야기

《팔십에 머물러》|노란 병 이야기

입력 2010-01-16 00:00
업데이트 2010-01-17 15:07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하룻밤에 일고여덟 시간씩 잠을 자도 부족하던 단잠이 팔십에 머무르며 네 시간만 잘 수 있어도 감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단잠을 돌이키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쓰다 단념하고 네 시간, 세 시간의 잠을 감사하며 받아들였더니 오히려 밤을 평탄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깨어서 보내는 밤 시간에 일어나 무엇이건 일거리를 찾아보고도 싶었으나 심하게 느껴지는 피로감을 제어할 수 없어. 이불 속에서 맑은 정신으로 지나온 긴 세월을 헤아려 본다. 그러던 중 이십 년 전쯤 되는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주일 설교 말씀에 원로 신 목사님이 하신 ‘주님을 떠나 어느 사유나 물체에 강한 애착을 가지면, 주님이 깨뜨려 버리신다’는 말씀이 떠올라 내가 겪었던 사건을 회상하게 되었다. 그날 밤은 새벽까지 취해 있었다.

이미지 확대


오십여 년 전 시댁 한 구석에는 열어 보지 않는 공간이 있었는데,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혼자 있을 때 살짝 헌 문짝을 열어 보았다. 던져 버린 것 같은 물건들이 먼지 속에 쌓여 있었는데, 그 먼지 속에 유독 눈에 띄는 노란 병 하나가 있었다. 병 밑부분은 원형으로 지름이 10cm 가량 되었고 높이는 20cm 정도 되었는데, 골동품에 문외한인 내가 먼지 속에서 어설프게 보기에도 틀림없이 명품인 것 같았다. 이후 어느 한가한 점심 때 기회를 보아 시모님께 무슨 병이냐고 여쭈었다.

“너 보았냐? 네 시아버지가 가져온 병인데 내가 미워서 처박아 두었다.”

“제가 보기에는 보통 병이 아니던데요.”

“그렇겠지. 보통 병이 아니면 무엇하냐. 네 시아버지의 친한 친구이신 박병태 선생이 정말 좋은 물건이라고 ‘자네가 사라’고 해서 몇 개 사다놓으신 건데, 내 눈에는 좋아 보이지도 않아서 말이지.”

‘어머님, 그러시다면 제게 주시지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턱밑까지 올라와도 아무 말도 못 하였다. 저렇게 버려 놓으셔도 주실 어른이 아니시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 병이 명품이라는 심증은 점점 굳어져 갔다.

이미지 확대
지금으로부터 칠팔십 년 전 한국 의학계에는 일제강점기에서도 의과 공부를 한 몇몇 의사분들이 한국 사회에서 유명하였다. 내과 박병태 박사, 외과 김명학 박사, 소아과 이선근 박사, 산부인과 윤태권 박사. 이 분들이 내가 시댁살이할 때 시부님께 찾아오는 친구분들이셨고, 최명선 박사와 시부님께서는 의과대학 교육계로 나가셨던 분이다. 박병태 선생님의 권유로 사들여 오셨다면 그 노란 병은 명품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박병태 박사님은 그 시대에 결핵(그 시대에는 지금의 암만큼이나 무서운 병이었다)을 치료하는 명의셨고, 그 막대한 수입으로 골동품을 사 모아서 우리나라 국립박물관 옆에 따로 골동품 미술관을 가지신 분이었다. 나는 참으로 그 노란 병을 갖고 싶었다. ‘그까짓 것’ 하시면서 먼지 속에 처박아 두시는 시모님의 자존심을 잘 아는 나는 이후에도 병 이야기를 꺼낼 순 없었다.

그 명의 몇몇 분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느 분도 다 가정 사정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가족사에 결점이 있었다. 모두들 이십 세 전후에 결혼을 하셨다. 슬하에 두 명 세 명 자손을 두셨지만 자신들이 명의가 되자 본부인은 가정에 두고 밖에서 신여성을 만나 새 가정을 가졌다. 상대 여성이 간호사인 경우도 있었고, 어느 여대 교수인 경우도 있었다. 그 신여성들과 새 살림을 하는 의사 선생님들은 머리를 쪽 져 비녀 꽂고 살림만 하는 본부인을 대접하지 않고 제쳐 놓았다.

그중에서도 시부님은 오랜 세월을 옆길로 안 가고 버티셨다. 친구분끼리 자주들 모이시는 주연 자리에서, 어느 한 여인이 시부님께 정을 두었다. 화류계에 몸을 두었으니 상대 남자가 한두 명이었으랴. 그중에서도 나의 시부님을 마음에 찍었다.

“내가 마음에 찍은 남자는 다 나한테 넘어왔는데, 이 박사만큼은 내 사람을 만드는 데 7년이 걸렸다.” 그 여인이 한 이 말은, 훗날 그 친구의 입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이다.

시부님과 그 여인과의 10년 세월 동안 시모님의 심경을 이해한다. 7년이란 구애 끝에 시부님을 차지한 여인은 화류계에서 몸을 빼고 시부님 연구실 가까운 곳에 가정을 꾸미고 불 같은 열애 속에 살았다고 하는데, 그걸 알고 난 시모님의 세월을 무엇이 보상하랴. 아무리 명품 화병이라도 시모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고, 분한 마음에 그냥 먼지 속에 처박아 두신 것이다.

10여 년 후에 다시 그곳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병 입구에서는 석유 냄새가 났다. 석유 한 방울이 귀하던 그 시절에 시모님께서는 그 병에 석유를 받아 놓으신 것이다. 정말로 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셔서 그러신 걸까. 그 심정을 나는 지금도 모른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노란 병에 대한 생각은 마음속에 쌓여만 갔다.

그러고 또 수십 년이 지났다. 내가 57세가 되던 해 시모님은 아무에게도 안 주시던 몇 가지 보물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상을 치르고, 백일제를 지난 다음에는 내가 그 노란 병을 손에 들어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 놓고 보니 병에 그려져 있는 것은 춤추는 모습의 중국 여인들이다. 중국 보물이구나. 수십 년 동안 집요하게 갖고 싶었던 물건이었기에 옷장 앞에 놓고 밤낮으로 들여다보았다. 그 병이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 모른다. 따져보고 살펴보고 싶지도 않았다. 내 마음에 간직하였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큰 가치를 가슴에 안고, 볼 때마다 설레는 기쁨이었다. TV 프로그램 ‘진품 명품’에 출품해 볼까, 얼마나 가치가 나가는 병일까. 억대 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가치를 혼자 정해 놓고 기대를 부풀려 보았다. 흐르는 세월에 비추어 축축한 장마철에도 노란색은 아름다웠고, 단풍이 드는 가을철에 더욱 나의 마음을 빼앗았다.

지금은 가진 것 없어도 그 병의 가치를 생각할 때 든든하게 생각되면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오후, 한가한 마음에 옷가지를 정리할 때였다. 방 반대편에 있던 전화가 요란하게 울었다. 전화벨에 놀란 내가 황급히 옷장 문에서 손을 떼고 뒤돌아서는 순간, 입고 있던 한복 치맛자락이 그 병을 덮쳤다. 병은 방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앗! 소리 지를 틈도 없이 병은 박살이 났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쩌랴. 머릿속이 하얘져 갔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신 목사님의 그 설교 말씀이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대한 사랑과 애착에 매달렸을 때, 그것이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사랑을 가린다면, 주님은 그것을 깨뜨려 버리신다는 것이다. 아까워서 떨던 마음이, 이젠 두려움에 떨렸다. 수십 년 동안 갖기를 원하였던 이것은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억대를 꿈꾸던 돈의 숫자도 꺼져 버리는 거품이었던 것을. 내가 병을 갖고 싶어 했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이었구나. 이윽고 내 마음은 고요하고 편안해졌다.

하나님. 용서해 주셔서 한 점 아까운 미련이 없이 편안을 주셨음을 알고 감사합니다. 다시는 하나님을 가리는 것 없이 하나님을 넘는 가치를 두지 않고, 부르시는 날까지 편안히 살겠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오소서 오소서.

홀로 찬송하며 엎드려 그 병 조각들을 비단보에 싸서 모았다. 명품은 틀림없었던 것 같다. 깨진 조각의 속살은, 새하얀 백색이었다.

글_ 조숙자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