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가 누군가의 용기 되리

나의 실패가 누군가의 용기 되리

입력 2012-06-17 00:00
업데이트 2012-06-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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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웃는’ 특권은 작은 성공에 도취하지 않고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자의 것이 되게 마련이다. ‘떠돌이 선수’ 최익성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프로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출신 고교와 대학 모두 잘 알려진 학교가 아니었고, 그가 다니는 동안 별다른 성적을 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체격이 작은 것도 문제였다. 그가 주로 맡았던 3루수와 외야수는 대개 덩치 큰 장타자들의 자리였다.

최익성이 갈 수 있는 곳은 연습생 자리뿐이었다. 그는 각 구단의 연습생 모집 일정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정리해 일정표를 만들고 차례차례 응시했다. 믿는 것은 빠른 발, 그리고 단단한 근육에서 나오는 힘. 체구가 작다는 선천적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홀로 땀 흘리며 만든 무기들이었다.

그가 삼성 라이온즈의 연습생 테스트에 응시했을 때였다. “잘하는 게 뭐냐”는 물음에 그가 “달리기는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삼성은 2군에서 가장 빠른 선수와 그를 맞붙였고, 결국 한 걸음 앞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는 최익성이었다. ‘빠른 발’ 하나로 삼성에 들어간 그는 입단 첫해 2군 북부리그에서 타격왕에 올랐다. 3년 뒤에는 1군 무대에서 팀의 붙박이 1번 타자로서 홈런 22개와 도루 33개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성공이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바로 그다음 해였다. 새로 부임한 감독과 갈등을 겪은 그는 한화로 보내졌다. 이후 팀을 옮길 때마다 시즌이 끝나면 트레이드 매물로 이름이 내걸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1999년에 처음 한화로 이적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LG, 2001년에는 KIA, 2002년에는 현대를 거쳤다. 2004년에는 다시 삼성으로 돌아왔지만, 이듬해 또다시 SK로 보내진 끝에 결국 시즌 후 방출당하고 말았다. 옮긴 구단의 동네 지리나 어렴풋이 파악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이적을 통보받고 다시 한숨 쉬며 짐을 싸는 삶이 거의 해마다 되풀이된 것이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리는 거친 스타일 탓에 얻은 자잘한 부상들이 몇 번의 기회를 놓치게 한 불운 때문이기도 했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게 있으면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외골수 기질이 종종 지도자들의 신경을 긁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그가 12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을 때 남긴 기록은 두 가지였다. 프로통산 14번째 20-20클럽(한 시즌에 홈런 20개와 도루 20개를 기록하는 것) 가입자. 그리고 역사상 가장 많은 팀(6개)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 그중 전자는 두말할 것 없이 영광스런 기록이지만, 후자는 흔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기록으로 통한다는 것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처럼 여러 팀을 옮겨 다니는 선수를 ‘저니맨(journey man)’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떠돌이’가 된다. 이곳저곳에서 늘 임시로 쓰이다가 조금이라도 나은 대안이 마련되면 곧장 내몰리는 처량한 신세. 다른 많은 저니맨과 마찬가지로 최익성 역시 미처 다 불태우지 못하고 남은 야구에 대한 열정을 움켜쥔 채 눈물로 몇 해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최익성은 새 삶을 시작했다. 자신의 선수인생을 담아 책을 쓰는 작가이자 출판사의 대표가 된 것이다. 출판사 이름은 ‘리얼 저니맨(real journey man)’의 줄임말인 ‘RJ’다. 자신의 삶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던지려는 뜻이다.

“제 이야기는 저나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읽고 용기를 얻을 수 있죠. 저는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팔 겁니다. 그래서 돈을 벌면? 그럼 저처럼 버림받은 선수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야구단을 만들 겁니다.”

실패를 곱씹은 끝에 끌어안고 새 출발의 바탕으로 삼은 그는, 더 이상 실패자가 아니다.

글 김은식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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