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시선너머’

[영화리뷰] ‘시선너머’

입력 2011-05-06 00:00
수정 2011-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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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빛깔 인권영화 편견을 꺾어 버리다



2003년 ‘여섯 개의 시선’으로 첫걸음을 뗀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가 여덟 번째 결실인 옴니버스 영화 ‘시선너머’(If You Were Me)를 내놓았다. 영어 제목(‘당신이 만일 나라면’)에서 프로젝트의 의도를 짐작할 만하다. 다섯 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탈북자나 직장 내 성폭력, 외국인 노동자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코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연출한 ‘바나나 쉐이크’를 보자. 어느 중산층 가정의 이삿날. 이삿짐센터 직원 봉주가 집주인의 귀금속을 슬쩍한다. 하지만 귀금속이 사라진 걸 눈치챈 집주인은 이삿짐센터 직원 중 필리핀에서 온 알빈을 의심한다. 우발적으로 손버릇이 발동했던 봉주는 뒤늦게 “알빈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감싸고 돈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설정. 윤 감독은 한번 더 비튼다. 알고 보니 임신한 아내의 병원비에 쪼들렸던 알빈도 금붙이를 슬쩍한 것. 소동극의 반전은 여기부터 시작된다.

윤 감독은 “악랄한 한국인 사장과 찍소리 못하고 당하는 착한 외국인 근로자 같은 전형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우리의 시선이 때론 더 무서울 수 있다.”면서 “이주노동자 하면 으레 떠오르는 단어들, 예컨대 약한, 착한, 불쌍한, 아무것도 모르는 등등부터가 우리랑 다르다는 편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번지점프를 하다’(2001), ‘혈의 누’(2005), ‘가을로’(2006)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의 ‘백문백답’도 돋보이는 에피소드다. 성폭력 가해자인 회사 간부를 상대로 외롭게 맞서 보지만 결국에는 ‘꼬리 치는 여자’ 내지 ‘헤픈 여자’로 낙인찍힌 전문직 여성을 다뤘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밝고 명랑한 이미지로 각인됐던 김현주는 ‘신석기블루스’(2004) 이후 7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에서 벼랑 끝에 몰린 여성의 불안정한 심리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강이관 감독의 ‘이빨 두개’는 탈북자 소녀가 장난으로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맞아 이빨 두 개가 부러진 남한 소년의 해프닝을 통해 탈북자에 대한 막연한 시선이 실제 개인의 삶 속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신동일 감독의 ‘진실을 위하여’는 거대 병원의 횡포를 인터넷 카페에 호소했던 가난한 젊은 부부가 순식간에 악플로 매도되는 폭력적인 현실을 그렸다. 부지영 감독의 ‘니마’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모텔에서 일하게 된 정은과 ‘불법 체류자’인 몽골 여성 노동자의 우정을 통해 연대와 희망을 모색한다.

옴니버스 영화라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선너머’는 자칫 정형화되기 쉬운 인권 문제들을 한번 더 비틀어 접근하면서, 영화가 인권의 과도한 무게를 덜어내는 데 유용한 매체임을 입증한다. 144분. 15세 관람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1-05-0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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