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소스 코드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소스 코드

입력 2011-05-13 00:00
수정 2011-05-1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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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수행하는 고독자 시스템에 휘둘린 개인

스티븐스(제이크 질렌할)는 미국 시카고행 통근열차 안에서 잠을 깬다. 맞은편 여자(미셸 모나한)가 친숙하게 말을 걸어오지만, 그는 그녀를 모른다. 당황한 그는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는 순간 까무러칠 지경이 된다. 낯선 남자가 거울 속에 서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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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되지 않은 혼란은 경악스러운 상황으로 바뀐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은 열차가 순식간에 폭파되는데, 그는 멀쩡한 상태로 밀폐된 공간에서 깨어난다. 거기서 또 다른 의문의 여자와 대면한다. 스크린 속의 그녀는 그가 신속히 기억을 되살리기를 바란다. 그는 미칠 지경이다. 미군 헬기 조종사로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던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던컨 존스의 공상과학(SF) 영화는 고독한 인물의 정체성에 관심을 둔다. 존스가 원안을 낸 전작 ‘더 문’(2009)의 주인공 샘 벨은 달 기지에서 홀로 일하다 자기 존재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소스 코드’는 다른 작가의 각본을 영화화한 것이지만 스티븐스와 벨은 서로 닮았다. 격리된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스티븐스와 벨은 정체성의 혼란으로 당황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스템의 음모가 개인의 운명을 휘두른다. 존스의 SF영화는 실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소스 코드’의 기본 아이디어는 사실 그리 독창적이지 않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 양자역학, 평행우주 같은 개념은 지금껏 수많은 SF 영화들이 말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소스 코드’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SF영화의 한계를 인물에 대한 애정과 촘촘한 아이디어로 돌파한다.

여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액션과 볼거리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짧은 시간 동안 인물이 어떻게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단순한 사건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야기 자체는 TV 시리즈 ‘광속인간 샘’을 연상시키지만, ‘소스 코드’의 진정한 이웃은 ‘사랑의 블랙홀’(1992)과 ‘12 몽키즈’(1995)다.

부득이하나마 존재의 비밀을 받아들이고서 스티븐스는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그는 군인이기에 대량 살상을 막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그가 만들어가는 드라마에 주목한다. 8분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그는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그의 고민-과거를 바꿀 수 없을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남아 있는 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은 숙명 앞에 선 인간이 던지는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티븐스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을 부여한 신에 저항하는 인물이다. 그가 끝내 거두는 ‘영원의 키스’는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남긴다.

‘소스 코드’를 게임 및 전쟁과 연결해 읽는 것도 가능하다. 제한된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 반복 등장하는 가상현실은 게임의 설정 그대로이며, 악당을 잡으려고 끊임없이 사지로 내몰리는 모습은 미국이 무슬림 세계와 벌이는 전쟁을 기억하게 한다. 전쟁과 게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소스 코드’는 게임을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게임의 윤리를 제기할 뿐 아니라 전쟁이 낳은 부당한 현실을 날카롭게 은유하고 있다. 상영시간이 90여분에 불과한 영화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영화평론가
2011-05-1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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