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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섬초처럼/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섬초처럼/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7-03-08 23:04
업데이트 2017-03-08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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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멀리 신안 비금도에서 겨울 한철 한뎃바람에 자란 시금치, 섬초. 발그레하게 굵은 뿌리를 보면 입맛보다 먼저 마음이 동한다. 눈서리 맞고도 그만큼 야무지게 광합성을 잘한 푸성귀가 또 없다. 살아 낸 관성대로 푼푼한 생김새. 씨 뿌려진 날부터 해풍에 엎드렸으니 팡파짐한 앉은뱅이다. 귓불처럼 도톰한 잎, 바닷가 성긴 햇볕을 어떻게 움켜 삼켰으면 속속들이 단물인가 싶은 뿌리. 키만 커서 싱거운 비닐하우스 시금치 따위는 댈 게 못 된다.

지붕 없고 집 없는 것이 가장 달게 겨울을 이겼다. 매운 날에는 부서지게 얼었다가, 푹한 날에는 쓰러지게 녹아도 내렸다가. 섬초를 다듬고 있으면 한 번 가본 적 없는 비금도가 궁금해서 안달이 난다. 비금도는 햇볕도 달겠지.

섬초가 끝물. 비닐하우스 봄동이 쏟아진다. 봄동은 이름조차 봄인데, 햇볕은 겨울 섬초에 더 깊이 깃들어 있다.

덤비고 버티는 삶은 섬초 뿌리 같아질까. 그렇게 달큰해질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섬초처럼.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7-03-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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