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젠더폭력 전문가 “양성평등, 100년 이후 보고 싸워야”

“맘충(mom+蟲)이나 김치녀 같은 여성혐오 발언은 벨기에에서 충분히 법적 규제대상입니다. 최고 징역 1년이나 1천 유로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리스벳 스티븐스 벨기에 양성평등연구소 부대표는 지난 14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벨기에의 여성혐오 발언 처벌법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티븐스 부대표는 15일 열리는 ‘온라인 젠더 기반 폭력 근절을 위한 전문가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 각국 전문가들과 함께 방한했다.

그는 “성적 차이에 기반해 경멸 또는 열등감을 느끼게 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은 처벌받는다. 1명 이상이 공적 장소에서 명예가 훼손됐다고 느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4년 법안이 마련되자마자 헌법소송이 제기되는 등 반발이 컸지만 합헌 결정을 받고 최근 시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스티븐스 부대표는 “직장 동료에게 여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발언을 한 남성을 고소해 첫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여성혐오 양상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티븐스 부대표는 “벨기에에서도 여성을 벌레에 비유해 묘사하는 단어가 생겨나고 여성 정치인이 빈번하게 공격 대상이 된다”며 “한 대학에서 가장 매춘부 같은 학생을 뽑는 콘테스트가 열려 해당 학생이 자퇴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를 감옥에 보내는 일이 우선은 아니다. 여성혐오 발언은 문제가 있으니 양성평등 교육을 충분히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엘 이보넷 주한 EU(유럽연합)대표부 부대사는 “유럽 역시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하지만 한도는 분명히 있다. 그 기준은 증오심 여부”라며 여혐발언 처벌과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연합 전역의 젠더폭력 피해를 돈으로 계산해보니 2천260억 유로(한화 약 275조원)로 추산됐다. 젠더폭력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여성혐오는 인종차별처럼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해 해결이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핀란드 보건복지국립연구원의 하나 오웬-휴마 부장은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에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집단들이 있다. 아무리 올바른 정보를 줘도 생각 자체가 반대쪽으로 굳어 있어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영국 데모스(Demos) 소셜미디어분석센터장인 칼 밀러는 “반(反) 페미니스트들이 완전히 격리돼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런 커뮤니티가 점점 커져서 다른 공간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막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스티븐스 부대표는 “양성평등이 몇 년 안에 이뤄질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100년 또는 이후를 보고 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여성가족부와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이날 주최한 워크숍에서 EU의 반 성폭력 정책 현황을 소개하고 리벤지 포르노, 사이버 스토킹 등 온라인 젠더 폭력 해결책을 논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