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셀프 무고교사’라는 이상한 죄 받은 자, 벌금 200만원만 내고 실형 피한 회장님

입력 : ㅣ 수정 : 2020-02-19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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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서울신문 탐사기획-法에 가려진 사람들] <1부> 가난은 어떻게 형벌이 되는가
약식명령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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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식명령은 처벌받는 당사자의 배경이나 상황에 따라 두 얼굴을 드러낸다. 서류로 이뤄지는 판결은 사회적 약자들에겐 억울함에 대해 항변할 기회를 갖기 힘든 제도이지만 권력층과 부유층엔 별다른 조사 없이 벌금만으로 죗값을 해결하는 고마운 제도가 된다.

●재소자 신분에 형 더 받을까 봐 자백

2017년 프랜차이즈 사업 실패 후 사기·배임죄로 수감 중이던 전장훈(59·가명)씨는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의 죄명은 무고 교사. 하지만 무고의 대상이 전씨 본인이었다. 사업 파트너인 이모씨가 검찰에서 “전씨가 시켜 전씨를 무고하게 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전씨가 ‘셀프 무고’를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는 자신의 어음 채무를 면제받기 위해 전씨를 어음 위조범으로 고발했다. 하지만 어음 위조가 허위로 드러나면서 이씨는 전씨를 무고한 혐의를 받게 됐다. 이씨는 무고죄를 벗기 위해 어음 위조라는 무고를 시킨 당사자로 전씨를 지목했다. 이와 관련, 전씨는 “이씨가 사업 부도로 도피 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 무고 혐의를 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전씨가 자신에 대한 무고 교사를 자백했다며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에서도 전씨의 셀프 무고가 논란이 됐다. 검찰의 약식기소를 넘겨받은 판사가 2018년 9월 전씨 사건을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전씨는 지난달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검찰 조사에서 검사가 ‘사기죄로 복역 중인 당신 말을 누가 믿어 주겠느냐’, ‘형이 더 추가되고 싶냐’고 위협하며 자백을 요구했다”면서 “형기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내가 나를 무고한 것으로 자백했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재소자 신분이었던 전씨의 불리한 처지와 사건을 손쉽게 종결하려 한 검찰의 편의주의가 맞물린 결과로 본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에서 한 전씨의 자백이 돌이킬 수 없는 증거가 됐다. 그는 출소한 후 “내가 나를 무고하도록 시키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있겠느냐. 그리고 그걸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형량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검사의 압박이 없었다면 자백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재심을 요구했지만 거부됐다. 한 변호사는 “판사도 검찰의 약식기소 내용이 이상하다고 판단할 정도로 상식적이지 않은 사건이었다”면서 “결국 경미한 사건으로 여겨 범죄자로 다시 낙인을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인데도 정식재판 요구 못 한다는 법

약식명령은 재력가에게는 처벌을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 중견 건설업체 사주인 C회장은 2018년 오피스텔 빌딩을 건축하려는 용도로 토지 매입 협상을 벌였다. C회장은 해당 토지에 인도가 포함돼 있는 만큼 매도인에게 매입 비용을 깎아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 부동산 매매에서 토지에 인도나 공도가 포함될 경우 보상 비용은 지자체와 해결한다. 이를 이유로 매도인 측 협상 대리인인 변호사 A씨가 기존 매매가를 고수하자 C회장은 A씨를 상대로 욕설과 폭언, 협박 등의 실력 행사에 나섰다. A씨가 욕설과 폭언이 녹음된 녹취록을 증거로 제시하며 C회장을 경찰에 고발했지만 약식기소돼 200만원 벌금형이 선고됐다. A씨는 약식명령 당사자만 정식재판을 신청할 수 있는 규정 때문에 자신이 겪은 피해 사건을 정식재판을 통해 다툴 수도 없었다.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한 변호사는 “C회장으로선 푼돈(벌금 200만원)으로 실형을 받을 수도 있는 형사사건을 정리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20-02-1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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