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청·춘
한국항공대학교 활주로 출발선에 대기한 세스나 훈련기. 긴장 어린 얼굴의 학생이 관제탑과 교신을 한다. “University three one ready for take off(유니버시티 스리 원 이륙준비 완료).” “University three one, clear for take off (유니버시티 스리 원 이륙해도 좋다).” 이륙 허가가 떨어지자 훈련기는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이륙 직후,옆자리에 앉은 김영선 비행교육원 교수의 지도가 계속된다.“수평 맞추고 throttle 계속 주고(연료주입), right turn(우선회) 하면서 고도유지, 수평유지, left bank(좌선회) 주면서 right rudder(우측 방향키) 더 쳐주고......”울진비행훈련원 한국항공대 훈련기가 길게 뻗은 울진 해안 상공에서 비행 훈련을 하고 있다.
한서대학교 헬리콥터 운항학과 학생이 태안 상공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헬기학과는 한서대학교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어릴 적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창공을 마음껏 나는 꿈을 현실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늘에서 보면 아무리 높은 빌딩과 산도 작아 보이고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도 조그만 개천처럼 보입니다. 땅값 비싸다는 강남도 아무런 존재도 아닙니다. 하늘에선 남들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만 있을 뿐입니다.” 이 학교 항공운항학과 졸업을 앞둔 함은혜(24·4년)씨의 말이다.
울진비행훈련원 학생이 야간비행 훈련을 하고 있다. 울진비행훈련원은 대형 비행기와 야간 이착륙이 가능한 첨단 시설이 갖춰져 있다.
# 감자칩 포장지 같은 집중호우를 보다… 날 수 있는 자의 특권
함씨는 “지난 7월 김포 지역에 국지성 집중호우가 원통모양의 감자칩 포장지처럼 내리는 광경을 비행하며 생생히 봤다.”며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들의 특권을 연이어 풀어 놓는다.
1986년 설립 이후 1000명의 민간 조종사를 양성한 항공대학교 비행교육원은 모든 표현에 ‘국내 최초’가 들어가는 한국 항공교육의 산역사이다.다른 대학에서도 항공조종 관련 학과가 잇달아 생겨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비행교육을 시키는 울진비행훈련원이 문을 열었다.
교관 없이 혼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솔로 비행에 성공한 한서대학교 항공운항학과 학생이 물세례를 받는 솔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솔로 비행에 성공하면 황금날개 마크와 견장을 달 수 있다.
민간항공사 기장이 되려면 1000시간의 비행 경력이 있어야 한다.대부분의 항공기 조종학과 학생들은 4000만~6000만원의 학비, 실습비를 군에서 지원받고는 7~10년의 의무복무를 한다.
명문대와 한서대 항공운항학과에 모두 합격했지만 조종사의 길을 택한 한 학생은 “조종사가 되는 게 쉽지 않지만 하나씩 이뤄가는 성취감과 하늘을 마음껏 누빌 수 있는 희열은 조종사만의 특권”이라면서 향후 최첨단 전투기 조종과 아프가니스탄 지원 등의 포부를 밝힌다.
한국항공대 함은혜씨가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서울 상공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 여성 파일럿은 여전히 쉽지 않은 길… 함은혜씨의 마지막 비행
하지만 여성들에겐 조종사의 길이 비좁은 편. 군 의무복무를 조건으로 실습비 등을 충당할 수 있는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는 이런 길이 없다.그나마 대한항공의 조종사 장학제도인 APC마저 없어지면서 경제력 없이는 조종사 교육을 받기 힘든 데다 신체적인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항공대 함은혜씨도 이런 이유로 졸업 후 비행의 꿈을 접고 민간항공사 학술교관으로 취업 준비 중이다.함씨는 “비록 조종사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던 60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제 인생 최고의 시간”이라며 아쉬움 섞인 비행의 감동을 이야기한다.
그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경험한다면 어릴 적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세상을 볼 수 있기에 훨씬 더 밝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소박한 바람을 털어놨다.
글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2011-10-08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