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정치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던 ‘5ㆍ16 쿠데타’가 오는 16일로 50주년을 맞는다.
5ㆍ16 주도 세력은 우리나라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발전의 기반을 조성하는 한 획을 그었다며 ‘구국의 혁명’으로 자평했다.
그러나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5ㆍ16을 군사쿠데타로 규정하고 독재, 부정부패. 인권탄압을 야기한 ‘역사 후퇴의 시작점’으로 정의하는 등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에 주목했다.
한국 정치사에 갑자기 등장한 뒤 유신시대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쿠데타 주역들과 이들에 의해 모진 핍박을 받았던 반독재 인사들은 이제 은퇴했거나 별세하는 등 속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권에 등장한 뒤 명실상부한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 활동했으나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재산 환수의 수난을 겪었다.
JP는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뒤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1990년 ‘3당 합당’, 1995년 자유민주연합 창당,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등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갔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참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2008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3개월여만에 퇴원했지만 최근까지도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3년~69년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했던 김형욱씨는 퇴임 후 미국으로 망명해 유신정권을 비난하다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고, 아직 그 죽음의 진실이 명쾌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암살했으나 1980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유신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바탕으로 권력 2인자의 자리에 올랐던 차지철 경호실장은 10ㆍ26 현장에서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총탄에 절명했다.
5ㆍ16 민족상 이사장을 맡은 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오치성 전 내무장관 등 다른 5.16주역들도 일찌감치 정계를 은퇴, 조용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민간인으로 ‘5ㆍ16 혁명주체세력’ 반열에까지 올랐던 김용태 전 의원은 2005년 세상을 떠났고, 이주일 전 감사원장, 구자춘 전 내무장관,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 이병희 전 의원도 타계했다.
5ㆍ16 세력에 맞서 민주화 시대를 이끌었던 현대 정치사의 ‘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8월 서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와 함께 ‘3김 시대’를 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원하고 강연을 통해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을 개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올 초 시민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했을 당시 한 강연에서 “조국에 군사쿠데타라는 죄악의 씨를 뿌린 원흉이 바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라며 “독재자 박정희는 18년간 장기 집권하며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연합뉴스
5ㆍ16 주도 세력은 우리나라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발전의 기반을 조성하는 한 획을 그었다며 ‘구국의 혁명’으로 자평했다.
그러나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5ㆍ16을 군사쿠데타로 규정하고 독재, 부정부패. 인권탄압을 야기한 ‘역사 후퇴의 시작점’으로 정의하는 등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에 주목했다.
한국 정치사에 갑자기 등장한 뒤 유신시대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쿠데타 주역들과 이들에 의해 모진 핍박을 받았던 반독재 인사들은 이제 은퇴했거나 별세하는 등 속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권에 등장한 뒤 명실상부한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 활동했으나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재산 환수의 수난을 겪었다.
JP는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뒤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1990년 ‘3당 합당’, 1995년 자유민주연합 창당,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등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갔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참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2008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3개월여만에 퇴원했지만 최근까지도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3년~69년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했던 김형욱씨는 퇴임 후 미국으로 망명해 유신정권을 비난하다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고, 아직 그 죽음의 진실이 명쾌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암살했으나 1980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유신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바탕으로 권력 2인자의 자리에 올랐던 차지철 경호실장은 10ㆍ26 현장에서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총탄에 절명했다.
5ㆍ16 민족상 이사장을 맡은 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오치성 전 내무장관 등 다른 5.16주역들도 일찌감치 정계를 은퇴, 조용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민간인으로 ‘5ㆍ16 혁명주체세력’ 반열에까지 올랐던 김용태 전 의원은 2005년 세상을 떠났고, 이주일 전 감사원장, 구자춘 전 내무장관,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 이병희 전 의원도 타계했다.
5ㆍ16 세력에 맞서 민주화 시대를 이끌었던 현대 정치사의 ‘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8월 서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와 함께 ‘3김 시대’를 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원하고 강연을 통해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을 개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올 초 시민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했을 당시 한 강연에서 “조국에 군사쿠데타라는 죄악의 씨를 뿌린 원흉이 바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라며 “독재자 박정희는 18년간 장기 집권하며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연합뉴스